정지영 감독이 재점화한 시나리오 작가 크레딧 문제

2020-08-25|박꽃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꽃 기자]

24일(월)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제작 건으로 업무상 횡령, 사기 및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현근 시나리오 작가가 쓴 <부러진 화살> 각본에도 부당하게 이름을 올렸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영화계의 ‘각본’ 크레딧 문제가 재점화되고 있다.


크레딧은 영화가 끝난 뒤 작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제작진 소개 화면(엔딩 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세한 저작 정보를 뜻한다.

크레딧은 영화인의 업적을 증명하고 다음 작품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데 주요한 준거로 작용한다. 작품의 일부 저작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연출’이라는 글자 옆에 감독의 이름이, ‘촬영’이라는 글자 옆에 촬영 감독의 이름이 오르듯 ‘각본’이라는 글자 옆에는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이 오른다.

그러나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의 ‘각본’ 크레딧 권리를 너무 쉽게 침해하는 일부 영화계의 부당한 관행은 오래도록 지속해 왔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흥행작 <아이 캔 스피크>(2017) 시나리오를 쓴 유승희 작가는 2008년 영화화된 박진희, 조한선 주연의 <달콤한 거짓말>(2008) 각본을 집필했지만 개봉할 때가 돼서야 각본 크레딧에 정정화 감독 이름이 함께 오른 사실을 알았다. 유승희 작가의 창작물(오리지널)임에도 사전 고지는 없었다.

‘각본’, ‘각색’ 크레딧에만 7~8명에 달하는 이름이 동시에 올라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소위 ‘누더기 크레딧’ 문제가 이때 발생한다.

시나리오작가조합 김병인 대표는 “자기에게 충성한 조감독 이름을 각본 크레딧에 올려 주려는 감독, 자기에게 충성한 프로듀서 이름을 각색 크레딧에 올려주는 제작자도 있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돌아갈) 크레딧을 선물처럼 나눠주는 것”이라고 문제를 짚었다.

김병인 대표는 “지금도 이름만 대면 깜짝 놀랄 만한 감독이 시나리오를 조금 고쳐 놓고 자신이 다 쓴 것처럼 말한다. 역할에 비해 이름을 크게(순서상 앞쪽으로) 집어넣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는 크레딧에 연관된 현실적인 이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시나리오를 쓴 김현정 작가는 “(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할 때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있어야) 자기 커리어가 된다. 대학교수 자격으로 강의를 할 때도 작품 경력이 중요하다. (크레딧에) 알게 모르게 많은 게 걸려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복수의 시나리오 작가는 감독이 각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경우 연출료에 시나리오 집필, 수정 명목의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증언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출간한 ‘한국영화 기획개발 활성화 기반 구축방안 연구’(2018)에 따르면 현업 시나리오 작가들이 가장 큰 고충으로 꼽은 건 ‘작가 입지 부재와 불합리한 크레딧 관행’이다.

“현장에서 배포되거나 업계 내에서 유통되는 시나리오 각본에 작가의 이름이 빠지고 감독의 이름이 대신 단독으로 명기되거나, (작가가) 시사회에 가서 각본 크레딧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거나 아예 자신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문제는 투자배급사와 감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계 특성상 시나리오 작가들이 항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타짜-신의 손>(2014) 시나리오를 쓴 이지강 작가는 “(영화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투자배급사가 작가는 계속 교체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집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영화인신문고를 통해 관련 신고를 접수하더라도 조정 권고에 법적 강제력이 없어 한계가 명확하다.

영화계에서는 보다 선진화한 크레딧 등재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마련한 시나리오표준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크레딧 조정위원회’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밀정>(2016) <남산의 부장들>(2019) 시나리오를 쓴 이지민 작가는 “각본 크레딧은 철저하게 시나리오 작업 분량을 따져 정해야 한다. 트리트먼트, 1고, 2고, 3고(기자 주: 3고는 주로 투자와 캐스팅을 성사시키는 최종 시나리오를 의미한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 작가가 7~80%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았다면 당연히 각본 크레딧을 가져가야 한다. 그 권리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면 작가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빼앗기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감독이나 촬영감독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자기 크레딧이 무사할까 마음 졸이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만 유일하게 마음을 졸이며 영화관에 앉아 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라고 호소했다.

시나리오작가조합은 문제가 불거진 크레딧 권리와 함께 ‘표준보수지침’, ‘표준계약서’ 등 세 가지 안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국회 등 주체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2020-08-25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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