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신간] “여자가…” 편견에도 살아남아 이름을 남긴 <영화하는 여자들>

2020-09-17|박꽃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 박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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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 전까지 스포츠영화는 필패라는 불문율이 있었고, 또 ’웬 핸드볼? 게다가 아줌마 선수들?’ 정말 마이너, 마이너, 마이너의 총합이라면서 반대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겼죠.”

여성 영화의 한계를 직시하라는 오래된 편견에 맞서 심재명 당시 프로듀서는 4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제작했다. 연출을 맡은 건 제작 현장에서 “여자는 다이어리를 쓸 일이 없다”(공적인 업무를 기록하고 재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황당한 우스갯소리를 들어가며 일해야 했던 임순례 감독이다. 영화계에 진출한 여성이 드물던 시절이었고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000년, 그렇게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영화 마케팅사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가 ‘여성영화인모임’을 만들었다. 이후 임순례 감독은 2016년 생겨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초대 센터장을 맡게 된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생긴 지 20년을 맞은 2020년, 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도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다만 기수를 따르는 집단의 구호 아래 비범한 누군가의 영웅적인 운동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십 수년간 영화계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여성 영화인 20명을 인터뷰한 책 <영화하는 여자들>을 쓴 주진숙, 이순진은 “영화계의 가부장적 문화와 기회의 불평등을 감내해야 했던 피해자”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살아남아 이름을 남”기려 했던 개인들의 분투를 모았다고 썼다. 제작 기획, 극영화 다큐멘터리 연출, 연기, 조명 촬영, 음향 편집, 미술, 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맡아온 인터뷰 당사자들의 삶은 매 순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영화 일을 한다’는 공통의 꿈 아래 흘려보낸 그들의 시간은 어떤 순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데 맞물려 굵직한 흐름을 형성한다.

관객이 잘 아는 작품과 영화인의 실제 사례가 나온다면 공감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의 영상을 책임진 엄혜정 촬영감독, 박찬욱 감독 <아가씨>(2016)로 칸국제영화제 벌컨상을 받은 류성희 미술감독, 한국 최초로 여성 조명감독 타이틀을 거머쥔 남진아 조명감독 등 남성이 주름잡고 있던 기존 영화계에 등장한 ‘낯선 여성들’은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후배 세대가 도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이제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제작한 제정주 프로듀서는 “벡델 테스트 통과 못 하는 영화는 만들지도 말자”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고, <한공주>(2014) <곡성>(2016)으로 자기 분위기를 보여준 배우 천우희는 “40대 남자 배우는 멜로 하는데 40대 여자 배우는 멜로 못할 게 있나?”라고 반문한다.

심재명, 채윤희, 임순례의 뒤를 이어 나타난 수많은 젊은 여성 영화인이 다시 20년을 보낸 2040년의 한국 영화계는 어떨까. 애정과 존중으로 주인공들을 인터뷰한 두 저자와 그에 성심껏 답한 스무 명의 여성 영화인 이야기 뒤로, 독자 역시 더 나은 미래를 슬며시 가늠해보길 바란다.

책 정보: <영화하는 여자들>, 주진숙 이순진 지음, ㈜사계절출판사 펴냄, 349쪽.

2020-09-17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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