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잡아 두고 싶은 욕망” <내가 죽던 날> 박지완 감독

2020-11-16|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가끔 영화가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몇 편을 찍어야 영화를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정년은 언제일까” 박지완 감독이 자신에게 때때로 던진다는 질문이다. 한편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돼 개봉이라는 빛을 마중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박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가 죽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넣고 꺼내고를 수차례, 조금씩 수정하며 가다듬기를 또 수차례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관객 앞에 섰다. 박 감독이 확신 없는 막막한 시간을 견디며 영화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시간을 잡아 두고 싶은 욕망’ 덕분이었다. 영화란 당대를 사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의 기록이기에 박 감독은 손수 그 시간을 영화 속에 담아 잡아두기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 그대로, 접점 없는 세 여성의 연대와 교감을 통해 위로를 전하는 <내가 죽던 날> 속에 2019년의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세 배우를 박제했다.

(*해당 인터뷰는 <내가 죽던 날> 관련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곱씹게 하는 영화더라. 형사 ‘현수’(김혜수)가 ‘세진’(노정의)의 죽음에 관해 파헤칠수록 순천댁(이정은)에게 불리한 형국으로 흐르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초고는 2012년경에 썼고 이후 컴퓨터 파일에 담긴 채 나왔다 들어갔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처음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며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를 생각했었다. 한때 유능한 형사였지만, 현재 ‘현수’는 모욕을 겪은 후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주변의 시선도 변했겠지만, 본인만이 체감하는 달라진 점도 있을 터이다. 극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주변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

영화가 끝난 후 회복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인생의 뜻하지 않은 난관에 걸려 넘어졌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사람은 좀 더 수월하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이 투영되곤 하는데,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까. (웃음)
영화가 결정되고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몇몇 지인은 그사이 결혼했다가 이혼한 거냐고 질문하기도 하더라. (기자 주: 극 중 ‘현수’가 이혼 진행 중임) 경험담은 아니고 그렇기에 편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경험과 고통을 대놓고 드러낼 만큼 뻔뻔하지 못한 성격이거든. ‘나의 순천댁이 올 거야’ 이런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다. ‘내년 혹은 다음 달에는 오겠지’ 혹은 ‘한 달을 못 기다려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안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쓰고 촬영이 결정되기까지의 시간을 버틴 것 같다.

세진을 살뜰히 챙기던 남자 형사 ‘형준’(이상엽), 수감 중인 세진의 오빠 그리고 섬이 지닌 폐쇄적인 이미지까지 모두 어떤 범죄 행각을 떠올리게 하는 맥거핀으로 작용한다.
그런 느낌 혹은 생각을 뒤집고 싶은 의도가 컸다. 현수의 뒤에서 동료들이 ‘남편 잘 만나서 잘난 척하더니 뒤통수 맞았네’라고 수군거린다. 현수가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대하는 얼마나 납작한 사고이고 표현인가. 또 세진이 섬 주민들과 잘 지냈을 수도, 괜찮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범죄의 기색이 읽히게끔 의도한 것도 있다. 촬영 들어가기 전 주변에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각자의 욕망을 투영해 바라보는 경향이 보이더라. 누구는 현수의 극복기로 접근하고 또 다른 이는 세진의 범죄 연루성을 좀 더 키워보자는 등 반응이 다양했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지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익숙한 듯 따라갔는데 전혀 예상 못 한 지점에 다다른 순간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지적한 맥거핀 같은 요소들이 이정표인데, 그를 따라가다 보면 (예상한 지점이 아닌)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거지. 이를 위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접근한다면 좀 더 가야 했지만, 중간에 끊은 부분도 있다. 언제, 얼마만큼 드러낼지도 관건이었다. 중요한 것은 현수 안에 생긴 의문, 다시 말해 세진이 왜 죽었는지 그를 구할 타이밍이 없었는지를 찾는 동기가 필요했다. 형사로만 접근한다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거든. 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세진에게 자신을 투영하게 되고 그래서 그의 흔적을 좇아가게 된다. 관객 역시 현수의 마음에 공감하도록, 현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도록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진실이 드러난 시점이 너무 후반에 배치됐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지적도 꽤 들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현수의 감정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영화는 신이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열어가는 경향인데 우린 신이 시작한 후 ‘잠깐만’하고 다음 신에서 열어가는 구조다. 트랜드와 우리 방식 사이에 고민이 있었으나 결국 <내가 죽던 날>에는 우리 방식이 맞다고 판단했다. 현수는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질문을 하는데 그 행위를 이해해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현수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세진이 보이는데 그 과정을 촘촘히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전개가 느리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행히 제작진과 스태프 모두 우리 방식에 동의해줬다. 신인 감독 입장에서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셔서 감사하다. 특히 김혜수 선배가 큰 힘을 실어 주셨다.

김혜수 배우에게 많은 부분 의지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고, 배우는 시나리오를 본 순간 운명처럼 ‘줌인’됐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한 부분을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풀어나가는 방향에 대해 공감했다고 했다. 당신이 아는(경험한) 이야기이고, 잘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하더라. 상업적인 문법을 따르기보다 본래의 길을 따라가 보자고 했고, 그런 지지가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이 됐다.

혹자는 근래 김혜수 배우가 펼친 최고의 연기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비슷한 생각이다. 뭐랄까 굉장히 연기적이면서 아주 인간적이어서 배우로서 한 계단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인상이었다.
내가 그렸던 ‘현수’와 (김혜수) 선배가 생각하는 현수가 다행히 아주 닮았었다. 선배가 말하길 뭔가를 더 하려 하기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메이크업도 기본만으로, 액서사리도 줄이 가는 목걸이 하나 이런 식으로 매우 단순하게 갔다. 솔직히 말하면 ‘김혜수라는 배우를 오롯이 담아내는 것’도 촬영하면서 내 목표 중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바랐거든. 우리 영화가 끝난 후 선배가 드라마 <하이에나>에 출연했는데, 어찌나 화려하고 멋있던지!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 촬영 중에는 정말 ‘현수’로만 지냈던 거구나 싶어 순간 울컥하기도 하면서,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순천댁은 남동생이 죽고, 식물인간이 된 조카를 돌보며 살고 있다. 말을 못 해 글로 현수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글씨도 삐뚤고 맞춤법도 틀리고 배움이 길지 않아 보인다. 그런 그가 세진에게 여권을 내미는데, 상당히 뜬금없다는 인상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배움이 짧고 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겠지만, 그는 사실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순천’댁이라 불린다는 것은 그가 섬 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드러나지 않은 전사가 있을 것이다. 굉장히 영민한 사람으로 동생이 죽은 후 그 자녀, 즉 조카를 입양할 정도로 자기 주관대로 차곡차곡 사는 인물이다. 조카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이겨 나간다. 초라한 행색 이면에 큰 세계를 지닌 사람, 그래서 세진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잘 보면 노르웨이에서 온 편지를 받고 또 보내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원양어선을 탔던 남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넓은 세상을 간접 경험했을 것이고, 여권도 그런 이유로 준비돼 있던 거였다.

순천댁이 언어 대신 글로 의사를 표현하기에 필체를 만드는 데 고심했다고 들었다. 이정은 배우가 직접 쓴 것인가.
직접 쓴 것이고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필체를 어떻게 갈지에 대해 가장 많이 논의했었다. 노동으로 단련된 손이라 소근육이 발달 안 돼 거친 느낌이 났으면 싶었고, 잘 쓰지는 못하지만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쓰기를 바랐다. 한데 (이정은) 선배가 글씨를 굉장히 잘 쓰신다. 오른손으로 못 쓰는 것처럼 흉내내는 것은 한계가 있어 왼손으로 써 봤다면서 필체를 만들어 오셨더라.

<내가 죽던 날>


에필로그에서 형사를 그만둔 현수와 세진이 처음으로 만난다. 그들을 응원하는 입장에선 안심되는 확인 과정이나 반면 사족 같이 여겨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초고부터 있던 설정이었다. 현수가 새로운 출발을 결정한 후 그가 가진 욕망 혹은 바람에 대해 생각해 봤고, 그중 하나가 세진의 생존을 확인하는 거로 생각했다. 형사를 그만두고, 이혼이 확정된 후 분명히 확인하러 갈 것 같았다. 타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세진의 처지에서 보자면, 현수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심정이었을 거다. 아마 일기를 쓴다면 그 만남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 만남에서 세진이 현수에게 소중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그 편지는 아마도 순천댁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또 세진이 당장은 아니라도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계속 편지를 쓰면 인연을 이어가는 거지.

현수가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라고 형사 업무에 매달리는 이유를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형사를 그만뒀다는 것은 (현수가) 회복했다고 봐도 좋을까.
초반에 현수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인생이 이미 박살 난 상황에서 그 사실을 잊고 제대로 살 수 있을지 등의 복잡한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그 생각을 멈춰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데 못 멈추는 거지. 그렇게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빙빙 돌고 깎여 나가면서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던 때 순천댁과 세진을 만난다.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거다. 형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도모한다고 그가 가진 고통이 싹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고통이) 남아 있으면 있는 대로 앞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여럿 있으나 현수가 잔치음식을 싸서 순천댁 집을 찾아가 들어서는 장면을 좋아한다. 현수를 따라 카메라가 들어가 쭉 집 마당을 훑는다. 순천댁은 기척에 발을 걷고 나와 현수를 보고 들어갔다 다시 나와 바가지를 던지며 평상에 앉는다. 그 동작을 보면 굉장히 쭈뼛쭈뼛하고 마주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평상에 앉을 때도 현수보다 한 박자 늦게 앉거든. 그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 순천댁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감춘 게 있는 상황에서 현수를 만나는 게 저어됐을 것 아닌가.

촬영 기간과 장소는 어떻게 되나. 또 제작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8월 말에 크랭크인해 마지막 촬영을 태국에서 11월 초쯤 했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섬의 경우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촬영했다. 세진, 순천댁, 마을 잔치하는 곳이 다 다른 섬이다. 순천댁 집은 운도 근처에 있는 섬, 섬마을 사람들의 있는 공간은 자월도로 기존에 있던 주택을 섭외해, <우리들>(2015)과 <우리집>(2019)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안지혜 미술 감독이 ‘미술 안 한 것 같은 것’을 목표로 세팅했다. (웃음) 순제는 약 35억 원 정도로 손익분기점은 150만 명으로 알고있다.

첫 장편을 내놓으며 느낀 점이나 소감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영화가 ‘현수’가 ‘세진’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터뷰이를 만나면서 나가는 이야기인 것처럼, 준비과정에서 여러 인터뷰이를 만났다. 김혜수, 이정은 두 유명 선배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배우 중에 캐스팅 대상을 미리 만나 신을 그려 보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한번은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한 선배가 혜수 선배와 일대일로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너무 긴장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처음이라고 진정시키기도 (웃고) 했고, 이런저런 사정을 조율해가는 일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더라. 또 혜수 선배가 이번 영화에서는 촬영 도중 끊지 말고 쭉 이어가고 싶다고 해 그렇게 했다. 배우에게는 힘들지만, 연출자로서 많은 소스를 얻을 수 있는 경험이라 감사했다.

단편 <여고생이다>(2008) 이후 데뷔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간의 이력을 짧게 들려준다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여고생이다>를 만든 후, <김씨 표류기>(2009)와 <초능력자>(2010) 등 몇몇 영화에서 스탭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면서 다른 시나리오를 의뢰받아 쓰기도 하고, 두 세번 준비하다 엎어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를 너무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무엇일지, 다시 현장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제작을 맡은 권남진 피디님을 만났고 한번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죽던 날>이 시작됐다. 졸업할 즈음 상을 받거나 주목받은 여성 감독이 많았는데 예상외로 데뷔한 분이 적더라. 아마 나처럼 때를 기다리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한다.

당신에게 영화는 뭘까.
가끔 영화가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몇 편을 찍어야 영화를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정년은 언제일까 뭐,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던진다. 영화가 아니어도 이야기를 좇는 일을 했을 것 같지만, 영화를 하고 싶은 이유는 시간을 잡아 두고 싶은 욕망 때문 인 것 같다. 이번에 ‘2019년의 김혜수’를 담은 것처럼 말이지. 처음 시나리오를 쓴 2013년부터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현재까지 그 시간 시간의 내가 투영돼 있는 것 아닌가. 준비부터 개봉까지 그 자체로 시간의 기록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그 시대의 관심거리를 이야기하기에 나는 그 시간을 영화 속에 담아 잡아 두고 싶다.

마지막 질문!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까만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원래 푸들 한 마리를 키웠는데 임보(임시보호)하던 믹스견을 들이게 됐다. 아침마다 두 마리와 같이 산책하는데 늘 보는 나무, 땅, 계절, 사람들이 매일매일 다르다. 너무 백수 같지만(웃음) 강아지들에겐 날마다 같이 산책하는 좋은 사람일 수도.


사진제공_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020-11-16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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