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연기 보여주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 연우진

2021-04-02|이금용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연애 말고 결혼>, <내성적인 보스>, <7일의 왕비>까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했던 배우 연우진이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우연히, 또는 우연치 않게 만난 네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들어주는 극중 주인공 ‘창석’처럼 수수한 차림새로 인터뷰에 참석한 연우진은 “이제는 무언가를 꾸며내지 않고, 솔직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밝힌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 같다.
코로나19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그동안 찍어 놓은 작품들이 아직 개봉하지 못한 상태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조만간 공개될 텐데, 많은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

<연애 말고 결혼>, <내성적인 보스>, <7일의 왕비> 등 각종 로코(로맨틱코미디)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끌지 않았나. (웃음)
솔직히 지금은 그런 드라마에서 날 불러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일단 연우진의 존재감을 더 키워준 감사했던 순간들이고 제작진과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멜로 연기를 하게 된다면 예전과 달리 지금의 내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간 연기 스타일이 바뀌었나.
한창 로코 드라마를 찍던 당시엔 완전히 그 캐릭터로 보이기 위해 나답지 않은 모습을 꾸며내려 했던 거 같다. 지금은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고 솔직하고 꾸밈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런 결심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연기를 하는 매 순간마다 반성하고 고민한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거 같다.

어떤 작품을 하든 늘 내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치열하게 작품을 연구하는데 결국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고 후회와 아쉬움이 남더라. 그래도 그런 것들이 쌓여 결국 나만의 연기 철학이 되는 거 같다. 물론 그 철학은 시간이 흐르고 또 어떤 작품을 만나는지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웃음) 이번에 개봉한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김종관 감독님과 작업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김종관 감독과는 <더 테이블>(2016)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인데.
<더 테이블>을 촬영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했다. 감독님과 어떤 순간을 찬찬히 음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가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감독님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보답은커녕 오히려 좋은 선물을 받은 거 같아서 마음의 빚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웃음)

영화의 분위기가 독특하더라. 극 전반이 사건보단 대화 위주로 전개돼서 누군가가 읽어주는 소설을 듣는 느낌도 든다.
감독님 작품은 글로만 봐서는 지문이 짧고 여백이 많기 때문에 무얼 얘기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캐치하는 게 어렵다. (웃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김종관 감독님과는 영화적인 해석이나 결말, 정확한 의도에 대해서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얼핏 건조한 듯 보이는 그 글에 감독님만의 연출이 더해졌을 때 어떻게 나올지 너무 기대되더라. 그리고 이전의 감독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고도 느껴졌다.

어떻게 다르던가.
김종관 감독님의 예전 작품과 작업 방식은 비슷하지만 톤이 다르더라. 묘한 경계에 있는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고, 과거인지 현재인지도 불분명하고. (웃음) 영화의 메시지도 그렇지 않나. 죽음이나 상실, 회한의 감정을 말하면서 동시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김종관 감독에 대한 상당한 신뢰와 애정이 엿보인다. (웃음)
종종 작업실에 놀러가고는 하는데, 감독님과는 앞으로도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독님은 항상 궁금한 사람이다. 배우와 감독과의 관계를 넘어 서로 무언가 통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가. (웃음)

이번 작품에선 우연히, 또는 우연치 않게 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가 ‘창석’을 연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위치로서, 무미건조하고 색깔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 영화가 ‘창석’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만든 소설이라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선 ‘창석’이 채색되지 않은 도화지가 돼야한다고 판단했다.

여담이지만 평소 대화를 나눌 때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인가.
오히려 내가 얘기를 하는 편이다. (웃음) 다만 내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면서도, 선을 넘을까 에둘러서 표현하게 되더라. 또 정작 내 고민은 잘 안 꺼낸다.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속내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네 명의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데, 어느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나.
모든 이야기가 특별하기 때문에 어느 한 에피소드를 고르기가 어렵다. 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를 꼽자면 김상호 선배님이다. (웃음) 서로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어색하게 리딩을 마친 뒤, 현장에서 선배님의 눈을 처음 똑바로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하더라. 진솔한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서 ‘창석’이 아닌 연우진의 감정이 자꾸 올라와서 꾹꾹 억눌렀던 게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미영’이 등장하는 첫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인데.
어떤 분들은 그 에피소드가 로맨스일 거라 예상했다는데 그렇다면 나와 감독님의 의도가 통한 셈이다. (웃음) 하지만 사실은 멜로와는 거리가 먼, 늙음과 지나간 시간에 포커스를 둔 이야기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이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현재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어머니께 조언을 얻고자 했는데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더라.

‘미영’ 역을 맡은 이지은(아이유)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미영’으로 다가와서 너무 놀랐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던 이지은 배우와 내 눈이 마주쳤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첫 에피소드를 전부 담고 있다고 느껴졌다. 분명 나보다 어린 사람인데 마치 세상을 전부 꿰뚫어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학교후배 역의 윤혜리, 바텐더 역의 이주영 배우는 어땠나.
자신만의 개성이 남다르면서도 작품에 잘 녹아드는 배우들이다. 윤혜리 배우는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독특하더라. 자기만의 세계관과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해서 잘 흔들리지 않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허스키한 목소리도 연기자로서 장점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주영 배우 역시 희소성이 있지 않나. 날 것 그대로라고 할지, 유연하다고 할지 매 리딩, 매 컷마다 새로운 느낌의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나.
‘내 인생의 이야기를 써나가보자.’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해답을 주진 않지만 지나간 시간을 마주볼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삶을 반추해보는 것만으로도 감독님의 기획 의도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평소에는 거창한 거 안 한다. (웃음) 계속해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중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잡으면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게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특정 순간에 행복하다기보단 그저 지금 이 시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추억이 많아지는 게 기쁘다.

사진제공_엣나인필름

2021-04-02 | 글 이금용 기자 (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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