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순 디자인의 시대는 지났다! 디자인그리 여승윤 대표

2021-07-01|이금용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디지털카메라, 미세수술 로봇부터 펫 어플과 스마트교도소 시스템까지. 디자인 및 제품 전략 전문회사 ‘디자인그리’는 매번 독특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획기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디자인그리의 여승윤 대표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디자이너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을 리드해야 혁신적인 제품이 나온다”라고 말한다.


먼저 디자인그리 소개를 부탁한다.
디자인그리는 제품디자인과 패키지, 시각디자인 등 산업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예전엔 생활용품이나 IT 제품을 위주로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스타트업이나 창조경제 기업의 혁신적인 아이템과 관련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혁신적인 아이템이라면.
서비스와 하드웨어가 연동되는 형태나 좀 더 복잡한 기술의 헬스케어 장비, 우버 같은 플랫폼을 뜻한다. 지금 개발 중인 상품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인도, 우크라이나와 협업해서 SNS와 영상 콘텐츠, 마켓 플레이스가 융합된 펫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SNS 기능을 통해 펫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할 수 있고, 추가적으로 위치 기반을 통해 펫샵이나 병원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를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흔히 산업디자인, 제품디자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디자인그리에 앞서 IT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람다를 창업했는데 그와 연관이 있을까.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곧장 영국과 한국의 디자인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항상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춰 디자인하다보니 나만의 제품을 개발하고 싶더라. 한창 스타트업에 이목이 집중되던 시기였던 터라 무선충전 관련 아이템으로 직접 창업에 도전했다. 운 좋게도 2014년 람다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선발돼 3개월 동안 참가하기도 했다. 이제는 람다를 정리하고 디자인에 전념하고 있지만 그때의 경험이 디자인그리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만난 분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나가면서 IT나 헬스케어 분야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트폴리오에 독특한 작업물이 많더라. 개인적으로는 전자발찌와 스마트 교도소가 인상적인데.
법무부와 함께한 프로젝트들 또한 람다로 알게 된 인연에서 시작됐다. 특히 스마트 교도소는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스마트 교도소란 교도관이 보다 쉽고 안전하게 수감자를 모니터링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개발을 위해 교도소들을 탐방하고 실제 수감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현재 영월 교도소에 테스트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로 올해 중에 정식으로 시행될 계획이다.


또 어떤 작업이 기억에 남나.
김치냉장고를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에서 처음으로 양문형 냉장고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이 제품의 초기 원형 작업에 참여했는데, 당시엔 컴퓨터 사양이 부족하기도 했고 제품 사이즈 자체가 크다보니 그런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강한 의지를 보였고 새로운 도전에 함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뿌듯했던 것 같다. 바나나 체온계도 즐거운 작업이었다.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꽤 이슈가 된 제품인데 개인적으로 해당 회사에 투자도 했고 해서, 2년 간 개발부터 생산, 해외 영업까지 직접 도맡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디자이너로서의 기준과 사업가로서의 기준이 다를까.
크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우선 비용만 따지는 클라이언트는 딱 잘라 거절하는 편이다. 물론 금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고객사의 도전정신과 의지를 더 높이 산다. 회사가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인드가 있다. (웃음) 고객과 우리가 갑을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에서, 각자 주인의식을 갖고 임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고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트너사에 직접 투자하거나 임직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투자하게 되면 내 제품처럼 관심을 쏟아붓고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니까. (웃음)

디자이너로서는 남들이 다 기피하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업력이 좀 쌓이면 미팅만 해봐도 ‘사이즈’가 나온다. (웃음) 얼마나 걸리겠네, 얼마나 어렵겠네 대충 계산이 나오는 거다. 그런 뻔한 프로젝트보다는 아직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고 소재조차 정해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서 큰 흥미와 도전의식을 느낀다.

보통은 디자이너가 개발 단계부터 비중 있게 참여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통상적으로는 프로덕트 매니저(PM)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그런데 외주 일을 하면서 디자인이 개발 단계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이런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디자이너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려면 기본적으로 전문 지식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기구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까지 두루두루 알아야 디자이너가 원하는 방향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디자이너가 제품 개발을 리드해야 혁신적인 제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선행되고, 기술적인 부분이 그 뒤가 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디자이너가 부품 소싱도 하고, 핵심 부품에 대한 리소스들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임직원을 비롯한 의사결정자들까지 설득해야 하는데 디자이너에게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비전공자로서 기술 분야의 지식까지 섭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당연히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여러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기술적인 용어나 지식들을 조금씩 습득했다. 이를테면 공기청정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필터 기술을 익히고, 냉장고를 디자인하면서 설계 메커니즘이나 공조 시스템의 설비 구조를 배우는 식이다. 이렇게 각 분야의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오다가 최근 들어선 내가 PM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개발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 디자이너가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리적인 형태의 제품디자인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디자인 업무의 70~80%가 UX와 UI, 브랜딩에 치중돼 있다. 예전엔 예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에 초점을 맞췄다면, 요즘은 서비스가 부각되고 디자인은 심플하게 바뀌는 추세다. 아직 심미성을 요구하는 회사도 있지만 방향성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고 비중도 크지 않다.

우리 아래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재량을 발휘하거나 업무적으로 성장할 만한 경우가 별로 없다. 나를 비롯한 기성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해도, 업계 전반의 전망이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디자인은 꼭 필요한 분야이고 상황이 어렵더라도 개개인이 역량을 키워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장인’에 비유할 수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장인으로 불리는 게 목표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그에 따른 고민은 없을까.
일반 사원이었을 때는 일은 많이 시키고 봉급은 적게 준다고 대표 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당시 대표의 처사를 다 이해하게 됐다. (웃음) 확실히 한 회사의 대표라는 자리가 책임감도 막중해서 매사 조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디자이너로서 창의력이 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뒤쳐지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고민이 많다. 나름대로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건강하게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포인트는 한 곡을 질릴 때까지 일년이고 이년이고 무한반복으로 듣는다는 거다. (웃음) 장르를 가리지 않아서 트로트도 듣고 팝송도 듣는다.

마지막으로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최근에 아바의 ‘해피 하와이’라는 노래에 빠져 있다. 지치고 힘든 순간 하와이로 훌쩍 떠난다는 스토리인데 여행가기 전의 설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좋아한다. ‘해피 하와이’를 틀어 놓고 있는 출퇴근 시간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사진_김영훈(무비스트 객원 사진 작가)

2021-07-01 | 글 이금용 기자 (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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