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없다 <작은 빛> 조민재 감독 & 곽진무

2020-02-04|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작은 빛>은 기억을 잃을지도 모를 뇌수술을 앞둔 남자 ‘진무’가 (곽진무)가 자신의 가족을 차례로 방문해 그들을 캠코더에 담으며 아버지의 기억과 마주하는 드라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초반 구분이 애매할 정도의 극사실적인 얼굴로 훅 치고 들어온다. 소주 광고 포스터와 오래된 액자가 나란히 걸린 얼룩진 벽지,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비틀린 작은 싱크대 문짝,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과 늘어진 줄 등등 마치 옛 드라마에서 볼 법한 빈곤한 풍경과 배우인지 일반인인지 구분하기 힘든 낯선 인물들이 특히 그렇다.

자전적 이야기를 꺼내든 조민재 감독과 시작부터 완성 그리고 개봉까지 변함없는 지지를 보였던 곽진무 배우. 두 사람이 공유한 치열했던 순간순간은 <작은 빛> 속 구석구석 스며들어 관객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작은 빛> 개봉 전에는 영화제로, 개봉 후에는 GV를 통해 관객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반응이 어떤가.

조민재 감독(이하 조민재) 영화를 만들며 이 이야기가 과연 소통이 가능할지가 고민이었다. 영화의 서사와 구조, 맥락이 아주 쉬운데 주변에서 왜 어렵다고 하는지 생각해보니 언어가 달라서더라. 통상 상업 영화는 언어를 쉽게 풀어 관객에게 다가간다. 나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의 간극에 대해 주로 부정적인 반응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공감해주시더라. 당시 (곽) 진무 형만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웃음)


곽진무 배우(이하 곽진무) 부언하자면 <작은 빛> 속의 이미지나 서브텍스트 등에도 경험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어 읽어 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다.

조민재 익숙한 소재인 가부장제를 메인 플롯으로 끌어올리면 영화가 좀 더 쉽게 다가갔을 거다. 서브로 내리고 가족이 아버지를 기억할지 말지에 대한 딜레마로 가면 좀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다.

오랜 기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힘들게 첫 장편을 냈다. 무언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다. 또 그 매체가 영화인 까닭은.

조민재 7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기에 일단 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쉼 없이 일만 하다 보니 무언가 여가를 가지고 싶었다. 글을 쓰고 춤을 추기도 했는데 영화 보는 게 가장 편하고 경제적이었다. 자주 보니 자연스럽게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노동에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첫 영화 준비 당시 고향 제주도로 여행을 가 8년 만에 아버지 산소를 본 후 노동 영화보다 내 앞에 있는 아버지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향후 노동 영화를 만들 예정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성은.

조민재 아마 다음 영화는. 몸의 노동성에 대한 영화일 거다. 몸이 어떻게 소진되는지, 노동 구조가 어디로 계속 밀려나고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가령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노동력이 이동되고 있고 더불어 자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담는 게 나름의 플랜이다. 영화 언어라는 것은 관객들과 소통의 여지를 당연히 열어 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접근한 후 이후 점차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해본다.

곽진무 배우에게 ‘연기’란 무얼까. 단역 위주 활동으로 무명 시기를 거치며 다른 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거다.

곽진무 연기를 왜 하는지 그 매력이 무엇인지 말로 풀어내기 힘들지만 연기를 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느낀다. 역사를 통해 앞날을 보는 사람이 있듯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화를 통해 앞날을 볼 수 있었다. 연기로 작은 부분이나마 영화에 참여해 함께 작업해 나가며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기보다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었다. 우선 ‘재능’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많은데 굳이 나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연기로 대중들과 소통할 때 노동이 굉장히 중요한 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도 노동을 놓지 않으려 했다.

연기 외에 병행하는 일이 있다면.

곽진무 많은 배우가 그렇게 하고 있고 나 또한 일을 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지금 같은 무명 생활을 길게 하는 것에 대한 각오와 지금보다 더 못한 상황이 와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간 주로 철거 등 몸 쓰는 일, 웨딩 촬영, 출판 공정에서 수작업을 요구하는 일, 예술 강사 등등 가리지 않고 일해 왔다.

영화의 총 촬영 기간과 예산 규모는. 엔딩을 작업 종료 후 따로 촬영했다던데…

조민재 추가 촬영 포함 12회차다. 예산은 퇴직금(약 2000만원) 정도다.

곽진무 조민재 감독이 당시 24살이었다. (웃음)

<작은 빛>


<작은 빛>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 글로 혹은 영상으로 자기 얘기를 꺼내 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치부를 드러내는 느낌이랄까.

조민재 아직도 상영할 때 잘 못 보는 부분도 있다. (웃음) 나를 너무 단시간에 드러낸다는 생각에 관객 앞에 서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너무 망설였고, 가족을 얼마나 제대로 보일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그래서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여러 상황을 바꿔 나갔다. 온전히 ‘우리 가족이 이렇게 살았어요’에만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고민의 지점을 달리 가져갔다. 자전적인 영화 혹은 자전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영화 속에 담으려 극 중 캠코더를 등장시켰다.

이복형제와 동복형제를 가진, 복잡한 가족사의 중심에 있는 ‘진무’(곽진무)를 연기하며 어떻게 공감하고 체화했는지.

곽진무 일정 부분 삶이 맞닿은 부분이 있지만, 그게 ‘진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거나 그로 인해 연기하기 수월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조민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지점이 많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이해하는 부분이 커졌다.

어려서 가족 해체를 맛본 남자가 일찍 사회에 나와 노동자가 되고, 그 치열한 삶 속에서 관계나 감정을 다치고, 그 과정에서 병을 얻는다. 가족을 추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가족을 찾아다니는 여정에서 마음을 연다는 그 하나로도 무언가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시골의 정서를 좋아하고 내게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벽지가 얼룩진 어머니의 집 같은 삶을 살아서 그런지 그 공간 안에 들어가니 어릴 때 생각이 나며 편해졌다.

지향한 영화의 톤과 리듬은. 또 이를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조민재 영화의 톤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진무 형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도움받았다. 영화를 본 후 리얼리티가 강하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일상보다 좀 더 공허하게 톤을 다운시켰다. 서로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불현듯 한 이미지가 빠르게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감정이 쌓이고 캠코더의 운동성으로 그 감정을 깨려 했다.

곽진무 개인적인 친분보다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했고 받아 보고 반했다. 굉장히 묵직하면서 깊고 살짝 광기가 돌 정도로 좋았다. (감독이) 도움받았다지만, 서로 주고받았던 것 같다. 소통을 자양분 삼아 순수하게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조민재 영화에 맞춰 연기 톤을 빼야 했는데 극 중 어머니와 형의 톤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았다. 연출적으로 쉬운 방법은 다른 배우의 연기 톤을 올려 균형을 맞추는 건데 그러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맞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4개월 정도 연습해 극 중 가족 구성원을 만든 거라 톤이 안 빠진다는 이유로 구성원을 바꿔 가족을 깨는 게 무서웠다. 진행하려 하니 진무 형이 처음 생각했던 톤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해줬다. 그래서 과감히 배우를 교체했다. 그때 내가 타협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마 내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을 거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이번 <작은 빛>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거든.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준 점이 가장 고마운 부분이다.

<작은 빛>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정서 혹은 메시지는.

조민재 영화 안에서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말로 표현하려니 가장 많이 받으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말로 하기 어려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것 아닐지… 개인적으로 어떤 한 시기에 잘 쉬고 잘 고민했다는 생각이다.

곽진무 감독이 아니라 주제넘을 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가부장제의 슬픈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미혼모였던 엄마가 호적 없는 딸이 취학 연령이 되자 호적을 만들어 주고자 급히 결혼한다. 호주제로 인해 한 여성이 결혼해 평생 힘들게 살았고 그 과정에서 가정이 탄생한다. 부조리한 관습에 희생된 어머니는 물론 가장의 책임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아버지 역시 힘들지 않았을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면 당시를 한 번 들여다보고, 그 시기를 겪은 분이라면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관객과 가장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영화를 보니 ‘작은 빛’이라는 제목이 더 다가오더라. 살면서 ‘작은 빛’의 존재나 그 소중함을 실감한 순간이 있다면.
조민재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영화를 찍으며 4~5년 만에 형을 만나 그가 가지고 있던 아버지와 우리 형제 어렸을 적 사진을 봤다. 나로선 처음 본 거였다. 이후 형과 연락도 자주 하고 소원했던 누나도 만나고 어머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순간, 빛을 만드는 과정에서 삶이 달라진 게 있다면 가족과 가까워진 거다.

<작은 빛>


극 중 궁금한 것 두 가지! 형 ‘정도’(신문성)가 길에 내놓은 작은 가구를 들고 가 벽과 서랍장 사이 생긴 작은 공간에 끼어 넣는다. 또 엔딩에서 아버지의 유골이 썩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조민재 그건 실제 있던 상황이다. 집 수리, 가구 옮기기 등 주로 남자들이 하는 일을 통해 ‘진무’에게 아버지 느낌이 나긴 나되 어색하길 바랐다. 사실 어릴 때부터 형과 누나보다 일찍 노동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 집의 가장은 나’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성인 돼 보니 참 어쭙잖은 생각이었지. (웃음)

곽진무 ‘정도’는 가족 중 가장 고립되고 외로운 인물이다. 외로움을 가구로 채우려는 의도였고, 다음 컷에 동생이 가고 난 후 혼자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은 그 쓸쓸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렇게 조민재 감독이 말한 바 있다. (웃음) 또 형이 천 원을 주는데 안 받겠다던 진무가 결국 받는다. 진무가 살짝 져준다는 정서와 느낌이다. 이 시퀀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조민재 흔히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고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상흔이 흐려질 수 있지만 내 안에 굳건히 버티고 있고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거더라. 이 생각을 유골이 썩지 않는 거로 표현했다.

아, 엄마 이름이 ‘숙녀’인 점도 눈에 띈다.
조민재 어머니 이름은 ‘신숙녀’로 50~60년대 모던 걸이라고 신여성이 많이 나왔다고 알고 있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그때도 ‘된장녀’ 프레임이 존재하기도 했는데 모던걸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잠식됐을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조금이나마 드러내려 했다.

영화는 ‘진무’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을 손꼽아야 할 정도로 ‘진모’의 시선과 동선을 따라간다. 극 중보다 살이 많이 빠져 보이는 데 젊은 배우로서 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심(?) 혹은 바람은 없었나.

곽진무 일단 내가 멋이 없는 사람이라 바라지도 않았고, 또 언제 이런 모습으로 찍어보겠나 싶었다. 중간중간 살이 빠질 것 같으면 일부러 라면 먹어가며 유지했다. 가끔 조민재 감독이 살 빠져 보인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웃음)

계속 재능 없다, 멋없다 하는데 겸손이 지나친 것 아닌가. 감독 입장에서 바라본 곽진무 배우는.

조민재 진지하게 고민하는 배우다. 진무 형을 21살 어느 영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아는 지식이 다인 것 같고 세상 오만하던 때인데 형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에 놀랐다. 단순히 관객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참여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인데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그 세밀한 차이를 몰랐다. 경험이 많은 형에게 연기적인 것이나 영화 톤에 대해 많이 배웠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후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형이 무언가를 던져줬던 것 같다. 마지막에는 최선을 다했으니 영화에 안 들어가도 된다는 데 그 말에 반항심이 생겨 꼭 들어갈 거라고! 다짐했다.

곽진무 치열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믿기에 민재에게 그 얘길 자주 했던 것 같다. 힘들다고 내색은 안 해도 민재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면 살짝 가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좀 더 치열해야 한다고 한 번씩 얘기했었다. 또 영화가 안 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준비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괜찮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차기작 혹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야기는.

조민재 급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영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나열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내 공간에서 고민을 가져오려고 한다. 그래서 노동을 이야기하더라도 내 몸으로 체득한 후 만들려고 노력한다. 서사적인 것은 염두에 둔 것이 있지만, 직접 경험하면 당연히 바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지금 소개하긴 힘들 것 같다. 요즘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몸의 노동, 즉 몸이 소진되는 모습을 어떻게 영상적으로 표현한 수 있을지다. 단순히 관찰이 아닌 공간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이를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곽진무 재능이 없는 만큼 있는 것에 한해 제대로 소비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 서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 관심거리와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조민재 일하다가 커피 마실 때다. 같이 작업하는 분들이 50~60대인데 내가 동등한 입장에서 혹은 앞에서 끌고 간다고 느껴져 나름 뿌듯하다.

곽진무 비염이 있어 바깥공기 맡고 코가 뻥 뚫리는 순간, 행복하다.


사진. 박은영


2020-02-04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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