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쓰고 돌아오다, 바른손이엔에이 곽신애 대표

2020-02-26|박꽃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꽃 기자]

“’<1917>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인상적이었다. 오스카는 8,000명 넘는 회원이 직접 선택을 한다. 비평가도 관객도 아니고 대부분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업계 종사자다. 그들이 전에 없던 일을 선택한다는 건 먼저 시대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일이고, 그러고 나서도 굉장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정말 그런 선택을 할까? 그럴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이라는 역사를 쓰고 돌아온 <기생충> 제작자, 바른손이엔에이 곽신에 대표를 만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오스카 캠페인’의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축하한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둔 트로피가 총 6개(기자 주: 장편국제영화상, 감독상에서 각 1개, 각본상, 작품상에서 각 2개의 트로피가 나왔다)인데, 모두 트로피 배분 방식에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웃음)
주최 측에서 수상자를 다 정해 놓는다.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전에 미국프로듀서조합(PGA)에서 메일을 보낸다. 제작 단계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여러 사람에게 엄청 까다롭게 질문한다. 캐스팅 기여도, 예산 결정권,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 등을 묻고 종합된 대답을 대조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작품상 수상자는 1번 곽신애, 2번 봉준호로 정해진 거다. 꽤 빡빡한 절차인데 미국 산업 내 시상식에서는 거의 똑같이 통용된다고 한다.

체계적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은 한 작품의 프로듀서 크레딧에 10~20명의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더라. 모두에게 상을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규칙이 정해진 것 같다. <기생충> 제작에도 여러 사람이 충분히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지만, 작품상 후보자는 곽신애와 봉준호라고 PGA 쪽에서 정리해줬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초전, 그러니까 소위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부르는 과정에 관해서는 기자들도 아는 지식이 많지 않았다. <기생충> 팀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그 과정을 일종의 작품 검증 개념처럼 이해했다고 말했다. 아마 그것도 캠페인이 거의 끝나가는 과정에서야 정리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영화계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니까. 경험해보니, 미국에서도 주요 제작사가 내놓는 텐트폴 영화(기자 주: 성수기 흥행 성적을 좌우하는 제작비 규모 큰 작품), 예컨대 톰 크루즈가 나오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같은 작품은 오스카 캠페인에는 관심이 없더라. 그런 영화는 성수기에 맞춰 (흥행이 가능한) 정확한 날짜에 개봉하는 게 목적이다.

당신이 이해한 오스카 캠페인은 어떤 과정이라고 봐야 할까.

영화 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기들 산업의 분위기를 띄우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착한 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레이스에서는 다양성, 특별함을 추구하는 작품이 주목받는다. 그런 영화가 계속 있어 줘야 영화 산업이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부분 9월, 10월 같은 비수기에 개봉하는 작품들이다. 우리도 북미에서 10월에 개봉했고, 규모 큰 영화가 상영하는 연말에는 상영 규모가 줄어들었다.

여러 시상식 후보에 오름으로써 다시 주목받은 셈이다.
11월부터 각종 시상식이 후보작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비평가 협회에서는 이 작품을 꼽았네, 또 다른 시상식에서는 저 작품을 꼽았네 하는 사이에 최종 레이스(아카데미 시상식) 참여자가 추려진다. 작품 간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 분위기를 더 띄울 수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도 후보 발표 단계부터 사회자 두 명을 내세워서 화제를 만들지 않나.(기자 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는 이사 레이, 존 조가 맡았다.) 이런 과정 끝에 작품이 상을 받거나 화제를 만들어내면 1, 2월경 다시 언론을 타는 것이다.

진작에 종영하고 대중에게 잊힐 지도 몰랐던 작품이 오랫동안 관심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처음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할 때 들은 이야기로는 작품상 후보 8~10편 중에 이름만 올라도 북미에서 확보한 기존 스크린 수가 몇 개던지 상관없이 바로 1,000개로 늘어난다고 하더라. <조조래빗>도 그렇게 1,000개가 됐다. 스크린 수가 많아지면 자연히 관객의 관심도 커진다. 그러니까 오스카 캠페인은 산업 관점에서 보기에 주목받는 게 마땅한 영화, 관객의 관심을 더 받았으면 좋겠다고 판단되는 영화를 뽑아서 분위기를 띄우는 과정이다. 거기에 <기생충>이 끼어들게 된 거다. <기생충>도 그렇게 1,000개 스크린을 확보했는데 그다음에 어떤 상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수가 또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작품상을 받으면 2,000개가 된다더니 진짜 그렇게 됐다.(웃음)

당초 국내에서도 북미에서도 작품상만큼은 <1917>이 타갈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북미 현지에도 수많은 수상 예측 사이트가 있고 1월부터 온갖 방식으로 결과를 쏟아낸다. 그때마다 항상 작품상 1등으로 손꼽힌 게 <1917>이다. <기생충>을 꼽은 비율은 전체 20%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저 20%는 그냥 <기생충>을 좋아해서, 다른 건 다 모르겠고 그냥 얘네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웃음)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현지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국제장편영화상은 당연히 <기생충>이 받는 거라고 했다. 못 받으면 그게 이상한 거라고. 각본상이 유력하다는 말도 많았다. 전통적으로 미국작가조합상(WGA) 결과가 영향을 많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자 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한진원 작가는 제72회 미국작가조합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기술상 중 한 가지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감독상, 작품상 부문에서는 끝까지 선두주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놀라운 결과였다. 시상식을 지켜보다가 감독상, 작품상에서 <기생충>을 호명하는 소리에 기쁨의 비명을 지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웃음)

북미의 어떤 언론에서 이런 표현을 본 기억이 난다. <1917>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청룡영화상, 대종상은 주최 측과 심사위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나오지만 오스카는 8,000명 넘는 회원이 직접 선택을 한다. 비평가도 관객도 아니고 대부분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업계 종사자다. 그들이 전에 없던 일을 선택한다는 건 먼저 시대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일이고, 그러고 나서도 굉장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정말 그런 선택을 할까? 그럴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입장을 바꿔보면 <1917> 대신 <기생충>을 선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수상 결과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기생충>을 향한 현지 분위기만큼은 최고였다고 전해 들었다.
사람들이 봉준호 감독님을 너무 좋아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마치… 요즘 가장 ‘핫’한 배우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한쪽에서 ‘현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래, 마치 현빈을 본 것처럼! 꼭 그렇게 좋아했다.(웃음) 만나는 사람마다 영화를 향한 열의가 뜨거웠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요일(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에 너희가 상을 받아야 한다, 내 표는 너희 것이다, 이미 너희를 찍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기생충>에 표를 던진 사람만 우리에게 다가온 건지는 모르지만.(웃음) 시상식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봉! 송! 하면서 환호를 하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사진 찍고…

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미국감독조합(DGA)상 때도 그렇게까지 요란한 테이블은 없었다. 봉준호 감독님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악수하고 사진 찍느라 물병을 따 놓고도 마시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상은 <1917>이 받더라. (살짝 묻어나는 경상도 말씨로) 이기, 뭐야?(웃음) 표심은 정말 모르겠더라. 체감으로만 보면 <기생충>이 받는 건데… 회원 중에는 현장 행사에 다니지 않고 댁에 계신 분들도 많을 테니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전 세계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모이는 오스카 캠페인이니, 손에 꼽을 만큼 인상에 남은 만남도 있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는 6~7개월 동안 그쪽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마치 ‘오스카 동기’처럼 서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막판에 합류한 거라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기생충> 프로듀서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저 “지니어스!”, “언빌리버블!”만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로라 던이 내 앞을 왔다 갔다 해도 나는 현실세계 사람 같지가 않더라. 되게 말랐구나… 하는 생각만 하면서(웃음) 멍하니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가슴이 정말 뛴 순간이 한 번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을 마주쳤을 때! 그를 향한 존경심이 너무 크다 보니 “오오오!” 하는 느낌이 들더라. 지인과 식사하고 계실 때라 말도 못 붙였지만.(웃음)

이런 환희에 가득한 이야기를 기자들과 나눌 날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이야기’처럼 지금으로 치면 호러, 코미디, 판타지 장르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토막토막 모아놓은 전집도 다 읽었다. 하이틴 로맨스도 좋아했다. 굉장히 유치한 이야기인데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스크린이나 로드쇼 같은 영화 잡지를 챙겨보던 사람은 아니었다.

어떻게 영화계와 연이 시작된 건가.

첫 직장으로 출판 대행사를 다녔다. 그다음 직장이 거기서 같이 일하던 분들이 차린 드라마 외주 제작사였다. 알고 보니 그 외주 제작사 선배들과 정성일 편집장(기자 주: 1995년 창간한 영화 잡지 <키노>의 편집장)이 절친한 사이였다. 사무실에 자주 놀러 오던 정성일 편집장이 나더러 잡지를 같이 만들 생각이 있냐고 물으시더라.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가 인생이 이렇게 됐다.(웃음) 사무실을 구하고 제호를 정하는 과정부터 시작해 총 3년 정도 영화 잡지 <키노> 기자 생활을 했다. 그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대학원을 두 번 다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공부도 많이 했다. 아마 한국말로 된 영화 관련 책은 거기서 다 읽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때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인연을 만난 셈이다.
지난해 부일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고 난 무대 뒤에서 정성일 편집장을 마주쳤는데, 서로 마주 보고 마구 웃었다. 아마 내가 “이런 날도 오네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정성일 편집장은 지금의 이런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보면 알게 되지 않나. 자기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는 걸.(웃음) 그런 한편으로는, 일을 하다가 문득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때도 있다.

어떨 때인가.
업계에서 만나 함께 일하던 사람 중에 지금은 사라진 이들도 많다. 대부분 영화 학교를 나왔고 청소년기 때부터 영화 만들기를 꿈꿨다. 그렇게나 영화 일을 하기를 원하던 사람은 다 어디에 가고, 내가 이 일에 남아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고민이 시작됐다.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시기에 맞는 고민이 내게 다가온 거 같다. 지난해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올해(2019년)가 한국 영화계 여성 감독들이 맞는 일종의 원년인 것 같다고.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 중에 다섯 편의 제작자가 여성이던 때였다. 상업, 독립 영화에서도 여성 감독이 꽤 많이 나왔고, 그저 그렇게 스쳐 지나갈 작품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을 내놨다. 앞으로는 여성 창작자와 뭔가 더 좋은 작품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2020-02-26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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