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의 아틀리에 3편] 김태연:Minuet Imagine② 패션계 거목 존 카사블랑카스, 그녀를 보자

2020-03-19|이동훈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이동훈 기자]



슈퍼모델 김태연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모델연기전공ㆍ예술교육원 모델학전공 주임교수, 한국모델협회 이사, 아시아모델페스티벌조직위원회 조직위원, 국제모델대회 심사위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역 모델로서의 자기 단련도 잊지 않고 있다.


본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패션 유토피아를 모색하는 탐구자 ‘김태연’을 당초 기획한 3부작을 연장시킨 4부에 걸쳐 소개해본다.


① 코로나 못잖은 IMF때 10대모델 ‘빅5’로 각광

② 패션계 거목 존 카사블랑카스, 그녀를 보자

③ “모델, 천 번을 담금질해야 피어나는 강철의 꽃”

④ 패션 유토피아를 꿈꾸다…이매진(Imagine)


■ 가족도 기대 않던 슈퍼모델 2위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랐을 때도 가족들은 제가 모델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성격이 수줍음이 많고 얌전한 성격이었거든요.”


‘1997SBS슈퍼엘리트모델선발대회’ 본선무대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SBS 본사)을 올라가야 했지만, 혼자 가기가 두려워 울며불며 언니를 졸랐을 정도로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언니인 김기연은 현재 한 가정의 주부이자 헤어스타일리스트, 말레이시아 여행객들에게 인지도 높은 ‘가이드맨 쿠알라룸푸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틈틈이 귀국 때마다 여동생의 밑반찬을 손수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언니이다. 하지만 그때는...


“대회 전날, 같이 가기로 했던 언니(*김기연 씨는 당시 모델라인 소속)가 밤샘 촬영일정으로 새벽에 들어왔어요. 자명종을 일부러 크게 해도 일어나지를 않는 거에요. 속상해서 언니가 덮은 이불을 토닥이며 대성통곡을 했죠.”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난 언니의 손을 끌다시피 상경했다.


1997년 8월29일, 슈퍼모델이자 톱 셀럽 이선진(최선규ㆍ송선미 공동진행)의 사회로 생방송된 엘리트모델 본선대회는 격이 달랐다. 서울 종로의 세종문화회관을 꽉 메운 관중석, 쉴새 없이 돌아가는 지미집 크레인ㆍ카메라, 눈이 뜰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쏘아지는 조명, 유인촌과 이소라(*92년 슈퍼모델 1위) 등 대한민국 연예ㆍ패션ㆍ경제ㆍ방송계를 대표하는 17인의 심사위원들, 그 앞에서 서니 옆구리가 결릴 것만 같았다.


“예선 때는 같은 줄의 어떤 언니한테 빌린 옷으로 오디션을 볼 정도로 가볍게 응시했지만, 본선은 무게감이 달랐어요. 처음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죠.”


김태연을 아는 누구도 그녀의 입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늦게 대회장으로 온 아버지 어머니도 꽃다발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무대에 선 2시간이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를 보던 이선진 언니가 제 이름을 부르자 부모님들과 기연 언니의 그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소리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해요.”


■ SBS슈퍼엘리트모델대회 입상이후 달라진 삶


▲ 모델은 무대에서 보여주는 7초를 위해 1000번의 연습과 10000번의 공을 들여야 한다. 김태연은 여고생 패션모델로 주목받으면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사진은 서경대학교에서 진행되는 김태연 교수의 워킹 수업 장면이다.

1997년 SBS슈퍼엘리트모델대회 2위 입상이후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유명인의 싸인을 받으려 애쓰기도 했는데, 싸인을 해주는 입장이 돼 얼떨떨하기만 했죠.”


쏟아지는 팬레터와 고백 심지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남학생들까지, 이럴수록 서먹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1부에서 언급했던 10대모델 빅5(김태연ㆍ장윤주ㆍ양석주ㆍ옥지영ㆍ정유미)의 일원으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살인적인 일정이 펼쳐졌다.


우아한 백조의 수면 아래 치열한 발길질, 이처럼 모델의 백스테이지(backstage)는 가혹하다.

1000일의 연습을 ‘단鍛’, 10000일의 시간을 ‘련鍊’이라고 했던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7초의 퍼포먼스를 위해 1000번의 연습과 10000번의 공을 들여야 한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행거에 걸린 의상을 입고, 헤어메이크업을 고치고 무대로 질주해야하는 반복의 62초였다.


비몽사몽 간에 런웨이에 오른 적도 수차례였다. 그리고 시간은 착실히 흘러가 운명의 1998년이 되었다.


■ ‘아, 우리나라 말이다’…낯선 프랑스 땅에서 나홀로


▲ 김태연은 봄날의 미뉴에트처럼 상냥하고 신중한 성격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끝장을 보려는 면이 있다. (사진=아이센스미디어 김광훈 작가)


김태연은 단발머리를 잘 하지 않는다.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데다, 다양한 룩을 소화하기 불리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SBS슈퍼모델대회는 미국 Elite 모델사의 후원인 만큼, 1~3위까지는 세계 슈퍼엘리트 모델 대회에 참가할 특전이 주어진다.


김태연은 여고 3학년때 이 해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세계 슈퍼엘리트모델대회에 참가한다. 이 대회는 세계 최대규모의 모델선발대회로 스타모델의 산실이었다.


문제는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유럽까지 동행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이 아니면, 그녀에 대해 오해하는 구석이 있다. 봄날의 미뉴에트처럼 상냥하고 화사하면서도 신중하다. 여기에 경솔한 행동도 잘 보이지 않아 소심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김태연은 일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목표에 가치와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시원스럽게 뛰어든다. 그래서인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겁 많았던 척 한 거였어?’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일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의 천성이다. 고지식할 정도로 끝장을 보려는 면이 있는 김태연이다.


18세의 소녀는 혼자서 해외 여행길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 그런데 1997년 불어닥친 IMF영향으로 비행기 표만 참가자에게 지원됐다. 소심하나 어떤 면에서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여고생이 독일까지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니스로 가야 했으니,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 패션계 거목 존 카사블랑카스의 극찬, 그러나


▲ 김태연은 외국어 공부를 손에서 놓질 않는다. 이는 1998년 참가했던 세계 슈퍼엘리트모델대회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게다가 니스에 도착하니, 오기로 했던 통역사가 오지 않았다. 망연자실 속 기다림, 마침 이를 발견한 한국의 취재기자가 “어떻게 고등학생이 혼자 와서 이 고생을 하냐”고 안쓰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 소리를 듣자 ‘아, 우리나라 말이다’라는 안도와 함께 따뜻한 물 같은 울컥함이 솟구치며 서럽게 울고 말았다. 통역사는 2일 후에 도착했다.


드디어 오른 세계무대 결선,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이번 대회 주최자이자 패션계 거두인 존 카사블랑카스 엘리트모델社 회장이 김태연을 직접 가리키며 “너처럼 예쁜 동양인 모델은 처음이다”라고 극찬을 하는 등 현지에서의 기대감이 높았다. 존 카사블랑카스 회장은 1971년 파리에서 모델 에이전시 사업을 시작해 신디 크로퍼트, 린다 에반젤리스타, 카렌 뮬더 등 유명한 모델들을 전부 발굴해내다시피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회 당일 통역사가 어떤 사정으로 그녀늘 남겨두고 파리로 가버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스타일리스트들이 ‘넌 일본인 소녀 같은 이미지가 어울린다’라며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당황스러웠지만,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하고 눈만 찔끔 감아버렸다.


대참사였다. 함초롬한 단발머리는 준비해온 퍼포먼스, 워킹, 의상 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대회는 그렇게 끝났다.


“대회 내내 머리가 짧은 것에 대해 가장 후회했어요. 기본적으로 머리가 긴모델을 좋아하기도 하는 데다 머리가 길면 어떻게든 스타일이 다양하게 나오니까요.”


이 일 이후 김태연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손에서 놓질 않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니 암담한 현실이 밀려왔다. 수능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계속>

2020-03-19 | 글 이동훈 기자 (rockrage@naver.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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