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감에 대한 영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정말 먼 곳> 박근영 감독

2020-06-01|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설’과 ‘진우’는 강원도 화천 목장에 사는 사이 좋은 부녀다. 이웃에 사는 언니와 아저씨, 그리고 할머니와 더불어 즐겁게 살고 있다. 아빠의 시인 친구가 찾아와 가족에 합류하면서 추동된 <정말 먼 곳>은 아빠의 쌍둥이 동생 고모가 방문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퀴어, 소통, 거리감을 다룬 영화는 화천이 펼치는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천혜의 풍광을 배경 삼아 중첩적으로 내러티브를 쌓아 올린다. ‘정말 먼 곳’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곱씹어 내면의 해답을 찾게 한다.

(*해당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장편 <한강에게>(2018)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두 번째 영화 <정말 먼 곳>의 시작은요.
몇 년 전, 화천을 자주 드나들고 머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내 화천의 공간들에 매료되었고 그곳의 아이러니한 느낌에 끌려, 이 공간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제 참석을 위해 강길우 배우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이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영화의 씨앗이 됐습니다.

<한강에게>는 대사를 특정하기보다 채워나가는 형식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를 촬영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정말 먼 곳>은 거리감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형식과 작업방식에도 그것을 반영하려 했습니다. 전작의 작업 방식과는 멀리 떨어져 보려 했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캐릭터와 대사들을 섬세하게 구축하려 했습니다. 촬영과 조명에서는 명암의 대비,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 등을 잘 활용하려 했습니다.

최대한 미니멀한 방식으로 제작한 전작과 이번 <정말 먼 곳>의 스케일, 로케이션, 제작비 등 규모 면에서 비교한다면요.
앞의 질문과 같은 이유로 전작과 달리 여러 인물의 관점과 낯선 공간을 다루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협업을 통해 작업했습니다. 다행히 전주국제영화제, 강원영상위원회, 한국영상위원회 등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게 돼 원했던 방식으로 함께하고 싶었던 분들과 든든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먼 곳>


<정말 먼 곳>은 양목장에서 일하는 ‘진우’(강길우)와 ‘설’(김시하) 부녀 앞에 ‘진우’의 오랜 친구 ‘현민’(홍경)이 찾아오면서 추동되는 이야기입니다. 공간 배경이 화천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극 중 ‘중만’(기주봉)이 ‘진우’(강길우)에게 하는 대사처럼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선택한 것일까요? (웃음)
서울로부터 물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아름답고 낯선 공간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곳이 과거에 고지전이 펼쳐지던 전쟁의 공간이었다는 사실도요. 이런 점들이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었고, 삶 속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설’은 아빠를 엄마라고 부르고, ‘진우’는 그런 설을 보며 본인 역시 어릴 때 아빠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중만네 가족에게 설명합니다. ‘의도’ 있는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설정들이 의미하는 바를 제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감흥과 해석으로 영화에 대해 생각해주시기를 늘 희망합니다. 설이 진우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 진우와 은영이 쌍둥이 남매인 것 등 여러 내러티브 장치들로 영화의 배경과 의미를 쌓아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설’의 유치원 등교 여부를 놓고, 보내지 않겠다는 진우의 태도에 현민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의 전사 혹은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진우와 현민의 전사에 대해 연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민이 들려주는 ‘아침마다 가방을 들고 유치원 차 앞에 나갔다가, 아이들이 떠난 후 돌아오곤 했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어머니가 들려주신 (제) 어린 시절 일화입니다.

현민이 화천에 와서 맡은 시 수업의 첫 번째 주제가 ‘고정 관념 깨기’입니다. 연출 취지가 읽힙니다.
그렇습니다. 고정 관념 또한 생각의 거리감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먼 곳>


치매를 앓던 할머니가 잠시 정신이 온전한 모습을 보입니다. 가족의 식사를 차리고, 진우와 쌍둥이인 ‘은영’(이상희)에게 식혜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요. 개인적으로 ‘식혜’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할머니와 은영의 교감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침 과거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식혜가 생각났습니다.

우시장에 가려는 중만이 키우던 소를 가리키며 ‘어차피 팔아 버릴 거면서 미련하게 섭섭해한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농장이나 목장 등 축산업 연관 경험이 없을 듯한데, 그 대사는 어떻게 떠올리셨나요?(웃음)
중만 같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런 말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우와 현민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러브신 수위 조절 등 퀴어를 다루면서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인지요.
고정 관념이나 편견 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되길 바랐습니다.

할머니 장례식 후 시장에 간 ‘설’이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설은 어떤 감정일까요.
그 장면 속 설의 표정이 주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이를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와 둘이 살던 ‘설’ 앞에 아빠의 친구가 와서 함께 생활하고, 또 (친모인) 쌍둥이 고모가 찾아옵니다. ‘설’ 역의 김시하 배우가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연기했는지요.
김시하 배우는 설의 상황을 모두 숙지한 상태에서 연기에 임했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모습에 감탄한 적이 많았습니다.

<정말 먼 곳>


진우, 현민, 은영, 그리고 문경과 중만을 연기한 강길우, 홍경, 이상희 그리고 기도영과 기주봉 배우와 작업하면서 받은 인상이나 소감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길우 배우는 영화의 시작부터 오랫동안 함께 준비를 해와서 가장 의지 되는 사람이었고, 현장에서도 늘 중심이 돼 줬습니다. 홍경 배우는 어렵게 만난 만큼 각별했고 시간이 갈수록 몰입해가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이상희 배우는 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입니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그 무게를 거뜬히 지탱하고 생명력을 더한 건 오롯이 배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주봉 배우는 영화의 전체 과정에서 산 같은 분이 돼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많은 의지가 됐고 영광이었습니다. 기도영 배우는 이번에 처음 함께 작업했는데, 그가 표현한 문경의 여러 모습과 성숙한 감정에 매료됐습니다. 항상 믿음과 신뢰를 주는 모습에 기댈 수 있었습니다.

설이 중만에게 할망양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 인물들이 출산 시기가 지난 어미양의 출산을 둘러서서 지켜보는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의도하신 바는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저도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들이 중첩돼 많은 감흥과 의미를 던져주는 장면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산 장면은 겨울에 다시 목장에 가서 20여 일 24시간 동안을 기다려 어렵게 촬영할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장면입니다.

영화 속 시 수업 중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을 낭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또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에게 ‘정말 먼 곳’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이 생각났고, 제가 시로부터 받은 영감을 영화에 함께 담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시인도 흥미로워하며 응해 줘 영화에 넣었고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각자가 생각하는 ‘정말 먼 곳’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나의 안식처는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에 있을까’를, 박은지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소소한 행복 거리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불 위에 모카포트를 올려놓고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2020-06-01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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