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지닌 수많은 ‘야구소녀’를 응원하며 <야구소녀> 최윤태 감독

2020-06-29|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공부도 못 했고, 방법도 알 수 없었고, 주변에서 의아한 반응을 보였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영화를 보고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꿈을 키웠고 마침내 첫 장편 <야구소녀>를 내놓았다. 프로 구단 입단을 꿈꾸는 고교 유일 여자 야구선수 ‘주수인’, 프로 야구 근처에도 못 가봤으나 전심전력으로 수인을 돕는 코치 ‘최진태’ 모두 최윤태 감독의 분신 같은 캐릭터다. 남녀를 떠나 꿈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 수많은 ‘야구소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임했다는 최윤태 감독, 진심이라는 ‘직구’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야구소녀>를 보며 몇 차례 눈물 났다. 울 순간이 아닌 데도 말이지. (웃음)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수인(이주영)과 엄마(염혜란)의 대화 장면에 감정이 많이 이입되는 듯하더라. 또 부모인 우리가 지지하지 않으면 누가 해주냐고 반문하는 아빠(송영규)와 엄마의 말다툼 등에서도 감정이 끌어 올려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후반부 트라이아웃 시퀀스에서 뭔가 감정이 울컥해졌다. 코치의 주문에 따라 공을 던지는 수인과 그를 지켜보는 또 한 명의 여자 후보가 “주수인, 파이팅!”하고 응원하는 순간 말이지. ‘고교 유일 여자 야구 선수의 프로 도전’이라는 소재가 독특한데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아, 그 장면을 빼먹었다! 시작이라 하면, 개인적으로 프로야구라는 명칭에 의문을 가졌었다. 예를 들면 남자 프로농구, 여자 프로농구 등 다른 스포츠는 남녀 따로 리그를 지칭하는데 프로야구만 남녀 구분 없이 부르지 않나. 이상해서 찾아보니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가 가능하다더라. 야구의 경우 기술이 어려워 문턱이 높은 편인 데도 불구하고, 영화 들어가기 전에 조사해보니 점차 여자 야구가 활성화되는 중이라고 한다. 여성 사회인 야구팀도 40여 개 이상이고, 점점 인프라가 구축되면 언젠가는 여자 프로 리그도 생기지 않을까. (웃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손님>(2015) 등의 편집부를 거쳐 단편 <시험비행>(2012), <가슴의 문을 두르려도>(2016)를 연출했다. 장편 데뷔작 <야구소녀>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지원으로 제작했다. 현장에서 학교로 돌아간 건가.
어린 나이에 충무로 현장에서 조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조감독이란, 그 영역이 연출을 보조하기보다 현장 진행과 이런저런 일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위치다. 어떻게 보면 프로듀서 쪽에 가깝다. 연출을 익히는 데 조감독 생활이 별로 도움되지 않아 고민하던 중 편집 기술에 관심도 있고 스킬도 있어 현장 편집을 담당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시나리오를 쓴 후 상업영화 제작사를 방문했으나 여성에 게다가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는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웃음)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정규과정 졸업생을 상대로 하는 장편제작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운 좋게 뽑혔다. 총 두 편 각 1억 2천만 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이 예산으로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상업영화, 독립영화 모두 안 되면 도대체 어떻게 찍느냐고 되물었었다. 적은 예산에 하고 싶은 것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맞춰 촬영했지만, 무엇보다 함께 해준 분 이들 덕분에 이만큼 할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애써준 배우들과 촬영 감독, 미술 감독 등 모든 스태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주수인’ 캐릭터가 곧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캐스팅 비중이 큰 데 이주영 배우를 주목한 까닭은.
단편 영화를 할 때부터 알고 있었고 <꿈의 제인>(2016)을 보고 한번 미팅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 깊었다. 기존의 여배우가 지닌 이미지와 달랐고, 특히 그의 시선이 좋았다. 강한 눈빛이 ‘주수인’ 캐릭터와 어울릴 것 같았다.

이주영 배우와 첫 미팅에서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나.(웃음)
2018년 10월에 만났다. 처음 만나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한 후 헤어지면서 출연해 줄 수 있냐고 물었고, 흔쾌히 수락해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야기해 본 결과 자기 확신이 강하고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자신이 어떻게 잡힐지 잘 아는 배우였다. 신뢰가 더 커졌다.

저예산영화라지만, 이주영, 이준혁 외에도 염혜란, 송영규 배우 등 놀랄 만한 캐스팅 섭외력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첫 장편이라 내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경력 많고 익히 알려진 배우분들이 다행히 캐스팅에 응해주셨다. ‘이분들이 우리 영화에 왜?’ 이런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영화는 수인 앞에 놓인 역경의 원인을 ‘실력’에서 찾는다. 설득력과 공감도를 높이는 주요 포인트로, 공정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의 정서에 꼭 부합된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지점이다. 실력은 있지만, 여성이라 프로에서 거부당하는, 즉 프로구단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다는 설정이 가장 쉬운 작법일 수 있으나 그렇게 가지 않았다. 어떤 역경을 줄 것이며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한 끝에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신체력에 주목했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썼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와 주변인들도 그렇고 영화를 만들 때부터 굉장히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주수인이 프로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였다.

그 질문에 트라이아웃에서 보인 실력이라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동의! 물론 그렇게 짧은 기간에 너클볼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개발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 우리 영화가 지닌 다소 판타지 같은 면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단기간에 너클볼을 익혀 주 무기로 활용하긴 힘들 거다. 하지만 익혔다면, 즉 주수인의 극 중 실력이라면 가능하다는 거지.

<야구소녀>


이주영 배우가 대역 없이 모든 투구를 소화해 냈다고 들었다. 공이 날아가는 모습 정도만 살짝 CG 처리했다고 하던데, 코치와 선수로 분한두 배우에게 한 사전 디렉션이 있다면.
이주영 배우에겐 날카로운 모습을, 반대로 코치를 연기한 이준혁 배우에게 살을 좀 더 찌워 후덕한 모습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영 배우가 한 달 정도 미리 트레이닝을 받아 직접 소화했는데 원체 운동 감각이 뛰어난 덕분에 놀랄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 실제로 나보다 훨씬 공을 빠르게 던진다. (웃음) 구속 75킬로 나올 때도 있었다.

수인의 ‘여자라는 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엄마가 수인에게 하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부끄러운 거 아니야’ 등 마음에 와닿는 대사가 참 많다. 만든 입장에서 각별한 대사가 있다면.
버스 시퀀스에서 수인이 코치 ‘최진태’(이준혁)에게 하는 “프로리그에 내가 대신 가 줄게요”라는 대사다. 시나리오 쓸 때는 몰랐는데 촬영한 후 편집하면서 보니 마치 수인이 내게 하는 이야기 같더라. 편집하면서 여러 번 돌려봤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코멘트도 부탁한다.
수인이 새벽에 운동장을 달리는 장면이 있다. 운동장을 도는 수인이 프레임 밖으로 나갔다가 한 10초 정도 흐른 후 다시 들어온다. 빈 곳을 비추는 시간이 기니 편집에서 삭제하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수인이 달려오는 그 시간을 기다려 주고 싶었다. 멀리서 호흡 소리가 들리며 화면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 관객이 수인을 응원하는 포인트가 되지 않나 싶다.

극 중 수인처럼 현실의 벽 혹은 주위의 반대에 부딪힌 경험이 있을까. (웃음)
당연하다.(웃음)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두 분 다 나가시면서 비디오를 빌려보라고 용돈을 놓고 가셨었다. 영화를 보며 내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할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한데 공부도 못하지 시골에 살지 게다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어 장애도 있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너는 말도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겠냐’는 거였다. 현장에서 일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고졸 출신이라 차별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흔히 영화계는 학벌을 안 본다고 하지만, 단언컨대 한국사회에서 학력을 안 보는 곳은 없다. (웃음) 한번은 단편 영화 할 때,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화술이 부족한 탓에 말을 못하면 감독하기 힘들다고 지적받은 적도 있다. 수인과 진태 모두 나와 닮은 캐릭터로 <야구소녀>는 남녀를 떠나 성장과 꿈에 관한 이야기다.

혼자 영화 보며 감독을 꿈꾸는 소년이라니, 왠지 그림이 그려진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나 감독은. 또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면.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두루두루 좋아한다. 굳이 꼽는다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취향이 아주 대중적이다. 최근엔 넷플릭스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퀄리티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영화를 본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하는지.
일단은 1시간 45분 동안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기분을 가졌으면 한다. 사실 <야구소녀>의 결말을 쓰면서 관객이 극장에서 나갈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나갈지 많이 고민했었다. 해피엔딩 같지만, 그렇다고 마냥 낙관하는 것은 아닌 어느 정도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는데 그건 영화를 본 후 현실을, 주위를 한 번 돌아봤으면 하는 이유에서였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세상에 ‘주수인’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수인을 응원하고 싶었거든.

준비 중인 작품은.
영화사 무비락과 함께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다. 아이템을 두고 고민하는 단계인데 6월 안에 결정할 것 같다.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음, 아내와 함께 저녁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때? 꼭 그때가 아니라도 아내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좋다. 보통 그러지 않나? (하하)

사진제공. 한국영화아카데미

2020-06-29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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