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 성공사례 됐으면” <기기괴괴 성형수> 조경훈 감독, 전병진 프로듀서

2020-09-11|박꽃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꽃 기자]



“한국 애니메이션은 내수 시장이 작다는 꼬리표를 항상 붙이고 다니는 장르다. 그러니 투자를 받으려면 해외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건지 그럴듯한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2015년, 오성대 작가의 웹툰 <기기괴괴>의 판권을 구입한 전병진 프로듀서는 조경훈 감독과 함께 중국 시장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린 ‘성형수’편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러나 한한령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국내 투자처를 순회하고 다녀야만 했던 두 사람 앞에 던져진 거절의 말들은 냉담했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성공(흥행)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좌절, 또 좌절이 반복된 6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기기괴괴 성형수>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시체스국제영화제 등 애니메이션 축제와 장르영화제의 대표로 손꼽히는 국제무대에 초청 받았다.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는 선판매까지 성사됐다. 이게, 정말인가? 잠시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는 두 사람은 이제 <기기괴괴 성형수>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성공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상기된 얼굴의 두 사람이, 나란히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어린이 위주 시장으로 형성된 국내 애니메이션계에서 호러, 스릴러 장르를 내세운 <기기괴괴 성형수>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다.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오고 간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전병진 프로듀서 (이하 ‘전병진’) : 애니메이션은 ‘내수 시장이 작다’는 꼬리표를 항상 붙이고 다니는 장르다. 그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보니, 작품을 기획해도 투자나 지원을 받으려면 해외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건지 그럴듯한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2014년 <기기괴괴 성형수>를 기획할 때는 중국 시장이 업계의 중심이었다. 마침 당시 (중국 이동통신업체인) 차이나모바일이 1년 동안 시범으로 만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에서 만화는 문화혁명 이후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은 만화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만화가 새로운 문화로 인식되는 시점이었다. 그들 서비스를 분석해보니 만화 소비자가 즐기는 두 가지 축(장르)이 발견되더라.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한 섹시 로맨틱 코미디물과 괴물이 등장하는 호러 괴담 스릴러물. 두 장르를 고민하다가 후자로 방향을 잡았다.


후자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전병진 : 중국이라는 사회의 특성상 섹시 로맨틱 코미디의 수위나 농도가 (당시까지는) 낮은 편이었다. 반면 한국, 일본이나 전 세계 국가가 즐기는 같은 장르의 수위는 이미 꽤 높아졌기 때문에, 중국에서 인기 있는 작품을 만들어도 한국이나 기타 글로벌 마켓에서는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포 호러 장르로 방향을 다잡고, 당시 나와 있던 우리나라의 괴담, 웹툰, 판화를 전부 조사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웹툰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대부분은 MT갔을 때 “내가 아는 형이 겪은 이야기인데…” 하는 식이었는데, 오성대 작가의 웹툰 <기기괴괴>만이 유일하게 작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로 창작되고 있더라. 그 창작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서 이전 작품을 전부 찾아봤다. 특히 <절벽귀>라는 단편 공포 웹툰이 굉장한 흥행을 했다는 걸 알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중국에서 기본 이상의 반응은 끌어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2015년 판권을 계약했다.


오성대 작가 <기기괴괴> 중 ‘성형수’는 일부 에피소드다. 처음부터 그 에피소드를 골라서 계약한 건가.

전병진 : 계약 당시에는 (‘성형수’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 <기기괴괴> 중 10개의 에피소드를 선정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저예산 옴니버스 형태의 공포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나 미국의 <환상특급>같은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판권 계약을 한 지 3~4개월 만에 중국에서 ‘성형수’ 에피소드가 그야말로 빅이슈가 됐다. 그때만 해도 한국 웹툰을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서비스가 없었는데, 중국어로 번역된 ‘성형수’가 위챗, 웨이보 같은 SNS를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젊은 중국 여성층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지금까지도 ‘성형수’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웹툰일 것이다. 그 덕에 프로젝트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웹툰 이미지 한 장만 보여주면 어떤 작품인지 알 정도였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역으로 국내에서는 중국에서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리트였다. 그러다가 바로 사드 문제가 터졌다.

상황이 완전히 전복됐겠다. 사드 문제로 시작된 한한령 때문에 당시 중국과 합작을 도모하던 수많은 콘텐츠 업계 종사자가 직간접적 타격을 입었다.


전병진 : 중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 메리트가 아니라 패널티가 된 거다.(웃음) 거기서 인기 있어봤자 뭐 하느냐, 어차피 제재 때문에 제작도 안 될 텐데… 제작비 일부 조달을 위해 한국의 창투사, 투자배급사, 부가판권 유통사 등 여러 곳을 찾아가 작품을 보여줄 때도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직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흥행)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에 투자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니, 그럼 애초부터 투자 성립이 안 되는 건이었다는 말인데, 그럴 거면 세 달에 거쳐 검토는 뭐 하러 했는지! 투자 거절당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된다!(웃음)

조경훈 감독 (이하 ‘조경훈’) : 세뇌가 참 무섭다. 작품을 준비하는 6년 동안 나도, 프로듀서님도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하다 보니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중국 회사와의 계약도 두 번이나 파기됐고, 주변 애니(영화) 관계자에게 작품을 보여줄 때마다 “이걸 왜 하세요? 미쳤나봐” 하는 반응이었다. 기획 과정과 시나리오 집필 과정을 거치면서 이 작품이 완성됐을 때 얼마만큼의 재미는 담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주변에서는 그런 것보다는 작품의 외적인 상황만 보고 미리 안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 작품이 초청됐다고 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우릴 뽑았지? 하면서.(웃음)


원작 웹툰의 독특한 발상을 잘 살리는 동시에, 장편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캐릭터와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조경훈 : 원작이 워낙 뛰어난 아이디어를 지녔기 때문에 기본적인 힘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 ‘예지’라는 캐릭터에 보다 집중하려고 했다. 원작의 뼈대에 ‘예지’라는 인물의 현재 상황, 갈등과 고민을 설계해 더하고 주변 캐릭터를 만드는 등 디테일을 더했다. ‘예지’는 정이 가거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최소한 그의 감정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했다. 그가 느끼는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끝에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언인지, 화두를 던지려고 했다. 성형의 위험성과 부작용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다. 아름다움은 내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규정에서 나오는 폭력성 때문에 개인이 괴로움을 당한다.

‘예지’가 성형수를 통해 미모를 얻게 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우호적으로 바뀐다.


조경훈 : 시선의 폭력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예지가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 남성이 가하는 폭력이 있고, 그가 예뻐졌을 때 남성이 가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예컨대 성적 희롱)이 있다. 결국 이 지옥도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전부 ‘적’만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구조를 강조하고 싶었다.


같은 의미에서 ‘지훈’이라는 인물의 역할도 도드라진다.

조경훈 : ‘지훈’역시 타인으로부터의 규정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혔고 그로 인해 괴물로 변화한 인물이다. 다만 그는 남자도 여자도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돼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아름다움)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해체하고, 자기만의 전혀 새로운 기준을 세워 컬렉션을 만든다. 이 인물은 싸이코패스의 특성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 그들의 특징이 무언가를 모으는 것이라고 하더라.


‘예지’와 ‘지훈’이 함께 맞는 클라이맥스는 정말 괴기스럽다.

조경훈 : 홍대성 음악 감독님의 (긍정적인) 욕심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20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사운드가 영상을 압도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감정의 흐름, 영화의 높낮이를 명확하게 살려주는 음악이었다. 특히 ‘예지’와 ‘지훈’의 어떤 순간에 같은 왈츠가 흐르는 대목이 있다. ‘예지’ 입장에서는 공포스럽고 절망적이지만 ‘지훈’ 입장에서는 행복한 축제인, 상반된 상황에서 같은 음악이 나올 때의 끔찍한 느낌이 있다. 음악 감독님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이 작품 흥행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 특히 호러 장르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초청 의사를 타진했는데,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프리미어(최초) 상영을 한 까닭에 무산됐다고 들었다.


전병진 : 정말정말 아쉽다.(웃음) 그래도 지금까지 12개의 국제 영화제에 초청이 확정된 상황이다. 영화제를 통해 작품이 공개되면 시장의 반응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선판매도 이뤄냈다. 대만에서는 구매 경쟁이 붙어서 최초 금액의 4~5배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북미, 유럽에서도 스크리너 요청이 온다. 그러니 이 작품의 사례를 보고 많은 투자자들이 앞으로 생각을 바꿔주셨으면 좋겠다.(웃음) 아이디어만 있으면 정말 재미있는 작품(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 <기기괴괴 성형수>를 만들면서도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정말 많았다. 속편 내지는 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조경훈 : 어차피 (코로나19로) 영화제에 못 갔을 텐데 뭐!(웃음) 하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국내에도 웹툰, 웹 소설, 게임처럼 훌륭한 IP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콘셉트의 원천이 많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그 매력을 잘 살리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앞으로 우리 업계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사진 제공_ (주)에스에스애니멘트

2020-09-11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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