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꿈꾼다! <도굴> 이제훈

2020-11-06|이금용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이제훈이 올 초 <사냥의 시간>에 이어 각 분야의 도굴 전문가들이 모여 강남 선릉에 묻힌 전설 속 유물을 파헤친다는 케이퍼무비 <도굴>로 관객을 찾았다. 길지 않은 기간동안 벌써 영화 두 편을 공개한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극장가는 걸 즐기는, 그야말로 ‘머릿속에 온통 영화뿐인 배우’다. 영화 DVD를 수집하는 건 물론 국내에 서비스되는 OTT 플랫폼은 거의 전부 구독할 정도로 영화에 ‘진심’인 그는 언젠가 연출까지도 도전하고 싶다며 자신의 롤모델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라고 수줍게 밝힌다.



전작인 <사냥의 시간>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올 초 영화의 극장 개봉이 확정된 상태에서 개봉 스케줄에 맞춰 홍보를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베를린국제영화제까지 초청돼서 들뜬 마음으로 독일에서 체류하던 중 뉴스를 통해 한국에서의 코로나19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게 됐다. 상황의 심각성을 보아, 개봉일자가 연기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향방보단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안위가 중요했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먼저였다. 이후 영화의 넷플릭스 공개가 확정됐는데, 솔직히 불안보단 호기심이 더 컸다. 보통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한다는 건 대상이 국내 관객에 국한되지 않나. 그런데 넷플릭스 공개는 전 세계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고 동시에 평소 OTT 플랫폼을 즐겨 사용하는 유저로서도 반가운 결정이었다.

어떤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나.
넷플릭스는 친구와 공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왓챠, 웨이브, 티빙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건 거의 구독하고 있다. 전부 챙겨보는 게 쉽지 않긴 한데 개별 플랫폼만의 단독 컨텐츠 때문에 전부 구독해야만 한다. (웃음) 머지않아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당연히 가입할 예정이다.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배우로서 느끼는 변화는 무엇일까.
예전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곳으로 로케이션을 가고 싶다거나 한발 더 나가서 정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상상까지 하고는 했다. (웃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사냥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국내에서 개봉할 때보다 영화의 파급력도 강하고, 나를 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점차 많아지면서 외국에서도 한국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우리의 이야기에 전 세계인이 공감과 관심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가 해외에서 수상하는 걸 보면 새삼 한국영화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뿌듯하기도 하고, 나 또한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사냥의 시간>을 기점으로 해외진출에 대한 포부는 줄어들고 지금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하고싶다는 열망이 더 커진 거 같다.

그래도 평소 극장 관람과 오프라인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현상황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을 거 같다.
아쉽지만 방역이 우선이니까. (웃음) 그래서 한동안은 주로 집에서 영화를 봤다. 하지만 다소 번거로울지라도 방역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관람하면 극장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얼마 전 <테넷>을 보러 갔는데 아이맥스관에서도 좋은 좌석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더라. (웃음) 팝콘과 콜라를 먹을 수 없다는 건 애석하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제들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데 놀랍고 기쁜 일이다.

연기를 넘어 영화 자체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듯하다. 박정배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훈은 머릿속에 온통 영화뿐인 배우”라고. (웃음)
어릴 적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어느 순간부터 스크린 속 배우들이 친숙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내가 그 안에 섞여 연기하는 상상을 하며 자랐다. 배우를 업으로 삼았지만 사실 직접 연기할 때보다 모니터를 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크다. 딱히 특별한 취미나 특기도 없고 음주가무를 즐기지도 않는다. 차 한 잔 두고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가끔은 내가 너무 재미없는 인생을 사나 싶지만, 예전 영화를 떠올리고 이야기 나누는 게 질리지가 않는다. 굳이 내가 나오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을 보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샘솟고 가끔은 직접 작품을 만들고 싶어질 때도 있다.

안 그래도 작년에 양경모 감독, 김유경 PD와 ‘하드컷’이라는 영화제작사를 공동으로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추후 본인이 직접 감독으로도 활동할 의향이 있나.
지금으로선 그럴 만한 역량과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할 거 같다. 그래도 만약 연출을 하게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 작품은 습작식의 단편으로 시작하고 싶다. 언젠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울림 있는 이야기를 하는 배우 겸 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도굴>로 돌아와서, 이번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는데.
극장 개봉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사냥의 시간>이 시사회도 못하고 넷플릭스에 공개된 터라 간만에 관객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웃음) 많은 분들이 안전에 대한 염려가 많으시겠지만, 극장들이 최선을 다해 방역하고 있으니 믿고 방문해주시길 바란다. 또 발랄하고 유쾌한 영화이니 관객분들이 보고 힘든 시기에 힐링과 웃음을 얻어가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보고 스트레스 날리거나 힐링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정작 내 작품 중에선 그런 게 많이 없더라. <도굴>은 가족이 다 같이 깔깔거리며 볼 수 있는 색다른 장르영화 같았다. 또 도굴이라는 소재부터가 흥미롭지 않나. 전개도 매끄럽고 기승전결도 분명해서 시나리오가 술술 읽혔다.

깔끔하고 ‘청춘’의 이미지가 강했던 지금까지의 배역과 달리 ‘강동구’는 수염을 기르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능글맞은 도굴꾼이다.
수염은 아마 호불호가 갈릴 거 같다. (웃음) 배우로서 거창한 변신까진 아니더라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또 ‘강동구’는 깐죽거리면서 매를 벌지만 밉지 않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웃음) 유쾌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위기를 해결하는 모습이 여태껏 맡았던 역할들과는 달라서 재밌을 거 같았다.

메가폰을 잡은 박정배 감독은 연출이 처음인데 작업은 어땠나.
연출 데뷔작이라 아직 서툰 부분이 많을 거라는 막연한 예상과 달리 감독님은 연출부 막내로 시작해 조감독 시절까지 현장 경험이 많은 분이라 작품을 보는 눈이나 현장을 운영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또 소재가 소재인지라 미술 욕심이 대단하더라. (웃음) 처음엔 고구려 고분이나 강남의 선릉이 배경이라 세트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내심 세트 퀄리티가 낮아서 연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미술적인 부분이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아서 걱정했던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 입장으로도 연기하기 수월했고, 관객분들도 몰입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유물 컬렉션부터 고분이나 선릉까지, 소품과 세트에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난다.
실제 유적지에서 촬영하기는 어려워서 촬영은 거의 세트에서 이뤄졌다. 땅굴조차 세트다. (웃음) 앞서 말했듯이 소품과 세트가 실물과 싱크로율이 높아서 매 씬 촬영할 때마다 미술팀과 소품팀이 위대해보였다. 땅을 파면서 떨어지는 잔해물도 소품팀이 진짜 흙 대신 만들어 넣은 콩가루와 선식이고, 입김 때문에 차가운 물에서 수중신을 촬영하긴 했지만 욕조 촬영과 병행돼서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디테일과 배려까지 뛰어난 제작진들과 작업해 여러모로 즐겁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고됬겠지만 대사량도 만만치 않더라.
도굴과 범죄를 다루는 장르의 특성상 전달해야 할 정보량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대사량도 많은 편이다. 대사를 하면서 딕션만 강조하기보단 자연스러움과 리드미컬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촬영장에서도 일부러 텐션을 높이고 대사 흐름을 놓치지 않는 데 집중했다. 더불어 함께한 출연진들이 내 연기에 적극적으로 리액션해준 덕에 ‘강동구’ 캐릭터가 살지 않았나 싶다.

극중 리액션 좋은 캐릭터로 조우진 배우가 분한 ‘존스’ 박사를 빼놓기 어렵다. 그와의 브로맨스가 돋보이는데.
조우진 선배와는 제대 후 복귀작이었던 드라마 <비밀의 문>(2014)에서 먼저 만났다. 조·단역을 포함해 현장에 굉장히 많은 배우들이 있었는데 유독 선배님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당시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멀찍이서 조우진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잊고 지내다 <내부자들>에서 너무 눈에 띄는 캐릭터를 발견하게 됐는데 그 사람이 조우진 선배님이더라. 반갑기도 하고, 저 배우와는 언젠가 꼭 함께 연기하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도 했다. 그러던 차에 <도굴>의 섭외 제안이 들어왔는데 마침 선배님이 출연을 논의 중이라는 거다. 그 말을 듣고 작품에 합류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웃음) 가까이서 지켜본 선배님은 연기도 뛰어나지만 평소에도 리액션이 좋아서 대화 나누는 게 즐겁다.

두 사람의 케미가 기대 이상이다. 특히 영화 중간에 깜짝 노출 장면에선 당신과 조우진 배우가 예상치 못한 폭소를 유발하는데. (웃음)
그 장면에서 굉장히 가벼운(?) 옷차림을 선보였는데, ‘강동구’가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재치를 발현한 결과다. (웃음) 촬영은 재밌었는데 오히려 관객이 망측하다고 할까 좀 걱정됐다. 비록 훌륭한 몸은 아니었지만 장면을 확인한 대다수 분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안심이다.

브로맨스에 묻혔지만 ‘윤 실장’(신혜선)과도 약간의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
시나리오에선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더 있는데 영화에선 편집됐더라. 베드신을 포함해 삭제된 부분이 꽤 많다. (웃음) 아마도 속도감 있는 전개나 일관성 있는 스토리를 위한 감독님의 결정이었던 거 같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판이나 코멘터리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성이 좀 더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건축학개론>으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전작 중 로맨스 작품이 많진 않은 편이다.
정통 멜로든 로맨틱 코미디든 로맨스를 하고는 싶은데 잘 안 들어온다. (웃음) <건축학개론>을 통해 20대 초반의 풋풋한 첫사랑을 보여줬다면 30대가 끝나기 전에 30대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상대배우가 있나.
이번에 신혜선 배우와 함께 작업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게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서로 죽고 못사는 로맨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 평소에 이지적이고 똑 부러지는 역할을 많이 맡지만 신혜선 배우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역할을 할 땐 나도 모르게 넋 놓고 보게 된다. (웃음)

쿠키를 통해 후속편을 암시하기도 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긴 했지만 우선 <도굴>이 많은 관객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내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으로선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은 바람이 가장 크다. 다양한 창구를 통해 모두가 힘을 합쳐 영화를 더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도 유적지나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편인가.
여행을 가면 꼭 현지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간다. 문화재 같은 걸 보면 그 유물의 정기가 내게 전달되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감탄하기도 하고. (웃음)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는 직업 탓인지 반대로 외부로부터 영감 받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미술품은 아니더라도 영화 DVD와 음악 CD를 꾸준히 사고 있다. 최근엔 영화 <위플래시>의 DVD를 구입했다. 극장에서만 3번, TV로도 봤는데 이번에 극장에서 재개봉한다고 해서 조만간 한 번 더 볼 계획이다. (웃음)

마지막으로 영화를 개봉하는 소감 한 마디 부탁한다.
사실 <도굴>을 작업하고 있을 때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님이 <서복>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조우진 선배가 그 영화에도 출연해서 본의 아니게 그쪽 소식을 자주 들으며 감독님과의 친분도 이어갔다. (웃음) 우리는 11월, <서복>은 12월에 개봉하는데 두 작품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영화계 전반이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건 우리끼리의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굴>과 <서복>뿐만 아니라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모두가 힘을 합쳐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올 수 있길 바란다.

사진제공_CJ엔터테인먼트

2020-11-06 | 글 이금용 기자 (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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