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정수정-최하나, 묘하게 닮은 듯 <애비규환> 최하나 감독

2020-11-17|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15년 전 가족을 떠난 친아빠, 사자성어를 사용하는 점잖은 현아빠, 귀엽고 말 잘 듣는 연하의 (아기의) 예비아빠까지 ‘토일’은 ‘애비’ 덕분에 골 아프면서도 사랑스럽고, 짜증나면서도 든든하다. <애비규환>은 가부장적인 사고를 향한 비난 아닌 유쾌한 비판을 날리며 출산과 결혼 등 젊은 세대의 변모한 가치관을 통통 튀는 리듬 안에 귀엽게 담는다. 신예 최하나 감독과 스크린에 처음 데뷔하는 정수정과 신재휘의 패기와 장혜진, 최덕문 등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함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2015년 초고를 쓸 당시보다 훨씬 강해진 비혼과 비출산의 시류를 체감한다는 최 감독. 규정하고 단정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고, 그 마음을 <애비규환>에 담았다.

제자(신재휘)와의 불꽃(?) 로맨스로 임신한 대학생 ‘토일’은 결혼, 출산, 가족 등에 관련한 젊은 세대의 자기주도적인 가치관이 많이 반영된 인물이다. ‘토일’을 연기한 배우 정수정과 또래라 작업하면서 공유한 지점이 컸을 것 같다.
정말 그랬다. 수정 씨와 첫인사부터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얘기해 보니 과연 그렇더라. 또래라 공유하는 부분이 크고, 서로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였다. 또 영화 보는 걸 둘 다 좋아해 영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었다. 그가 나보다 영화를 더 많이 봤고 취향도 좀 더 고상하더라.(웃음) 왓챠에서 매긴 별점 얘기하면서 특히 한 영화에 대해 열띠게 얘기했었다. 우린 너무 공감했는데 캐치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한 사람도 많더라 하면서 말이지.

어떤 영화인지 또 어느 지점이 좋았는지 궁금하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2018)다. 엄마와 딸의 서사가 주요 축인 영화인데 그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더라. 이런 이야기가 드물어서 또 엄마와 딸을 다룬 보편적인 서사가 아니라 그런 것 같다고 우리끼리 생각했다. 아직도 소년 서사는 많은 반면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단순히 일화로서 영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또 딸을 극진히 위하는 엄마 또는 아주 사이 좋은 모녀 관계가 주로 보이다 보니 <레이디 버드> 속 관계가 낯설게 다가가는 것 같더라.

<애비규환>도 한편으론 모녀 서사다. 친아빠(이해영)와 현아빠(최덕문) 그리고 (아이의) 예비 아빠까지 ‘애비’ 규환이지만, 영화 속 ‘토일’과 엄마 사이 형성되는 감정과 관계가 무엇보다 주효하다.
모녀 서사는 많지만, 그간은 주로 다정한 모녀상이 다뤄졌었다. 이런 전형적인 모녀 관계는 피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토일과 엄마가 다정하게 있는 장면은 딱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화 관계도 아니거든. <레이디 버드>를 보면 주인공이 엄마와 불같이 싸우다가도 쇼핑하면서 옷이 너무 예쁘다고 함께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나와 수정 씨가 특히 공감한 부분이 바로 이런 거였다. 극 중 토일도 엄마(장혜진)한테 혼나고 대들고 싸운 후 며칠간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진다. 둘 다 매운 음식을 좋아해 아빠 없이 불닭을 먹으러 가는 등 말이지.

<애비규환>


극 중 토일의 부모가 교사인데, 당신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가볍게 질문하자면, 토일-정수정-최하나의 싱크로율은 어떨까. (웃음)
음, 무뚝뚝한 면이 나와 수정씨의 공통점일 수 있겠다. 둘 다 뭐랄까,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어린 여성에게 기대하는 애교나 귀여운 모습은 없다. 나와 토일의 싱크로율이라 하면… 지금은 덜한데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까지 토일처럼 지기 싫어하고 호전적인 면모가 진짜 심했었다. 토일이 배드민턴 회원들과 싸울 때 버럭하는 것처럼 나도 진짜 다혈질이었다. 차이점은 나는 순간적으로 분노에 휩싸이면 콘트롤이 안 되는데 토일은 나보다 더 구체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거다.

들여다보면 다 사연 있는 가정이라지만, 토일을 임산부로 설정한 이유는.
사실 토일이 임산부여야 하는 의미를 훌륭(거창)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떤 메타포도 아니다. 또 우리 영화가 임신한 20대 초반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임신과 출산, 결혼 그리고 이혼 가정을 경유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영화다. 임신은 주체적으로 선택했고 이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토일의 혼란이 그렇게 크지도 또 이야기가 극 중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않았을 거다. 토일의 혼란과 고민 그리고 걱정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지만,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장치로 활용하는 것은 아닐지 사실 고민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토일이 꿈꾸는 미래 혹은 그가 원하는 것을 극에 녹여 냈다.

예를 든다면.
당면한 문제는 결혼과 출산이지만, 토일은 자기의 미래에 대해 당연히 고민하고 계획한다. 부모한테 결혼과 출산을 선언하면서 준비한 5개년 프로젝트 PT 내용도 그렇고(휙 지나가지만), 상상하는 시퀀스에서 입은 망토가 법복인 점도 그렇고 토일은 야망이 넘치는 인물이다. 출산도, 육아도, 일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일과 한문교사인 현아빠 사이 오가는 대화 속엔 사자성어가 그야말로 범람한다. 경쾌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느낌인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그렇게 많이 인용한 까닭은. 혹시 한자 실력이 월등해서?(웃음)
한자를 정말 싫어했었다. 제작자인 김승록 PD가 사자성어를 사용해 보자는 제안을 줘서 이후 네이버에 들어가 열심히 검색해 어울릴 성어를 발굴해냈다. 주제별로 정리돼 있거든. 몇 백 개를 다 보고 노트해 놨다가, 사자성어에 맞춰 그 인물이 쓸 법한 대사를 맞춰갔다.

토일이 현아빠와 이야기할 때 사자성어를 섞어 사용하는 것은 그를 무시했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토일은 어린 마음에 한자를 가르치는 현아빠에게 반발하는 마음이 들었겠지만, 익히고 기억해 사용한다. 한편으로 지기 싫은 마음에 악착같이 공부했을 수 있다. 어쨌든 아버지에게 신경을 썼다는 거지.

토일의 남친이자 예비아빠 ‘호훈’의 가정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분위기다. 이혼가정인 토일 네와 대비하면서 주안점은.
토일이 가족을 버리고 나간 친아빠를 15년 만에 찾는 것은 ‘호훈’네를 방문했다가 그 화목한 분위기를 접하고 정상가정이라서 그렇다고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친아빠는 결혼과 출산을 반대하는 엄마와 다를 거라는 생각에 찾아 나서지만,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토일 네가 사실 평범한 가족이라 그에 대조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이상한 캐릭터면서 선망의 가족으로 보이게끔 ‘호훈’네를 가져갔다. 탈한국적인 면모를 키워드로 공통점이라곤 한국과 동떨어진 것 밖에 없는 아이템들을 끌어모았다.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부모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열대 과일이 가득 올라온 식탁에서 스페인 전통식 빠에야를 먹는 거지! 괴짜로 보이지만 밉지 않고, 피하고 싶지 않은 무해한 인물들이다. 부산스러운 가운데 토일을 선생님으로 호칭하며 존대하고, 의견을 존중하고 지지를 보내는, 토일의 미래에 회색빛을 드리우는 게 아닌 전폭적인 조력자 같은 인상을 주려했다.

<애비규환>


‘친아빠-토일-현아빠’ 세 인물 사이의 온도와 친밀감 등 감정의 균형을 잡는 데 있어 신경 쓴 지점은.
좋은 아빠와 나쁜 아빠의 기준이 모호하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토일의 친아빠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지만 현아빠는 책임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그 지점에서 ‘좋고’ 혹은 ‘나쁘고’의 구분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친아빠는 사실 답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잘못한 점과 자격이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 정도의 염치는 있는 사람이나, 그렇다고 그를 온정으로 마냥 끌어안고 싶지는 않았다. 후반부 토일이 친아빠에게 ‘나머지는 안 닮을래’ 하는 대사가 있다. 웃으면서 말하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또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친아빠에겐 포커스를 안 주고 흐릿하게 처리하면서 사라지게끔 했다. 영화도 그를 향한 관심과 시선을 차단한다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촬영한 거다. 대신 그 자리에 현아빠를 선명하게 등장시켰다. (웃음)

토일은 두 아빠가 아닌 엄마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한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엄마가 아들의 손을 잡고 며느리에게 인도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딸을 사위 앞에 이끈 것처럼 말이지. 트렌드에 더 맞지 않나!(웃음)
흥미로운 발상이다. 주변에 한 번 권해 보는 것은 어떨지. 개인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인도한다는 게 그 마음은 이해하나 한편으로는 폭력적이라는 생각이다.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를 대입하면 폭력성이 좀 덜한 느낌이긴 하다. 혼자 혹은 신랑-신부 동시 입장 등 여러 모습이 있으나 극 중에선 기존의 결혼식 틀에서 토일의 선택이 돋보일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두 아빠가 아닌 엄마의 손을 잡는 것으로 설정했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또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 놓는다면.
토일-엄마-현아빠 셋이 결혼식을 연습하며 웃는 장면이다. 잘 보면 극 중 세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는 유일하게 화목한 신이다. 사실 그 장면이 시나리오 상에는 아예 없었는데 스탭들이 현아빠가 불쌍하다고, 한 번 결혼식 연습이라도 해보면 안 되겠냐고 얘기해서 생긴 장면이다. (‘뭐냐’ 이런 반응을 한 여자 스탭들도 있었다!) 화목한 모습이 있었으면 해서 시도했는데 촬영 감독이 줌아웃으로 촬영해줘서 너무 좋았다. 배우들이 리허설 없이 가고 싶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선물 같은 장면이다. 장혜진 선배가 친 ‘나 두 번 한 여자야’ 같은 대사도 애드립이었다. 당시 촬영할 때 폭우가 내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린 커플의 결혼과 출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전엔 종종 등장했지만, 최근엔 드물어 <애비규환>이 한편으론 반가웠다. 동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로서 비혼주의 강화와 저(비)출산의 시류를 체감하나.
크게 느낀다. <애비규환>의 시나리오를 2015년에 처음 썼고 작년에 수정을 거쳤는데 그간 달라진 점이 비혼과 비출산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다는 거다. 또 그 수도 훨씬 다수가 됐다. 2015년 당시에도 움직임이 있었지만, 페니니즘이 강화된 시류에서 ‘토일’의 선택에 이해 혹은 공감이 안 되면 어떨지 걱정했었다. 그래서 수정 씨와 대화를 통해 비록 토일이 이해는 안 돼도 응원하고 싶도록 구축해 나갔다. 토일의 야망을 드러내고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호훈’의 부모를 보여주면서 토일이라면 결혼과 출산, 육아와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려 했다. 물론 현실적인 우려가 없을 수 없지만, 예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행복하게 일과 육아를 양립하는 사람도 많기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려 했다.

2015년에 쓴 초고가 2020년 드디어 관객과 만나게 됐다. 그간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애비규환>의 시나라오를 쓴 후 한 3년 정도 백수로 또 중간에 회사를 다니며 공모전에 냈는데 모두 떨어졌었다. 중간에 쓴 다른 시나리오도 떨어졌었다. ‘한국영화계와 맞지 않나, 나를 원하지 않나, 이제 뭘 하지’ 할 때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과정에 선정됐고, 얼결에 감독 데뷔하게 돼서 지금도 얼떨떨하다. 지도를 맡으셨던 김홍준 교수님이 ‘상업영화 포트폴리오가 아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애비규환>을 홍보하는 것이 예상외로 재미있다. 지옥(?)같이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신기하다. 아직 여러 층의 관객과 마주하진 못했지만, 세대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것도 흥미롭다. 아, 얼마 전 설악산에 가서 호연지기를 얻고 왔다. 풍광이 아주 멋지더라.


사진제공_리틀빅픽쳐스

2020-11-17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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