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급은 하위 아닌 수평적 개념의 확장 <인천스텔라> 백승기 감독

2021-03-24|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통해 물질과 정신, 겉모습과 내면 사이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백승기 감독이 SF 영화로 관객을 찾는다. <인천스텔라>는 27년 전 우주로부터 들려온 정체불명의 구조신호를 따라 머나먼 별 ‘갬성’으로 향한 ASA(아시아우주항공국)의 ‘인천스텔라’ 프로젝트를 다룬 휴먼드라마. 인간은 무한히 귀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백 감독은 소위 C급이라 일컫는 유머와 말도 안 되는 미장센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A, B, C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개념의 확장이라는 백 감독, 그의 영화 철학과 <인천스텔라>에 녹여낸 여러 메타포에 대해 귀 기울여 본다.

라디오에서 고정 코너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이참에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매일 오후 12시에시 2시에 진행하는 ‘정은지의 가요광장’에서 ‘슬기로운 영화생활’ 코너를 진행 중이다. 매주 토요일 방송된다. (정영진과 최욱의)매불쇼에 나갔다가 히트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고, 벌써 1년 정도 맡아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영화를 많이 보기는 하는데 소개할 영화를 고르는 게 쉽지는 않다. 최근에는 <에이리언1>과 <이티>, <언더독> 등을 소개했다. 또 독립영화가 나오면 종종 소개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아직까지 영화는 작업이지 직업은 아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직업이 되는데, 돈을 못 버니 말이다. 돈을 벌 때까지는 따로 경제활동을 해야 해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영화를 찍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고1 남학생반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이 참 귀엽다.

<인천스텔라>는 <숫호구>(2012),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 <오늘도 평화로운>(2019)에 이은 네 번째 장편으로 무려 SF 장르물이다. 27년 전 우주로부터 들려온 정체불명의 구조신호를 따라 머나먼 별 ‘갬성’으로 떠나고자 하는 ASA 직원들의 ‘인천스텔라’ 프로젝트를 다룬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46초 만에 매진됐다고 들었다. 관객의 반응은.

백승기의 영화를 궁금해하고, 나오면 바로 관람하고 또 N 차 관람도 하는, 소수의 매니아층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분들의 존재 자체로 감사하다. 한데 이번에 매운맛 그러니까 코미디를 기대했다가 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인천스텔라>가 일정 부분 슬프고 감동적인 면이 있는데 백승기의 영화를 보면서 슬퍼하고 눈물 흘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해봤을 것 아닌가! 그래서 슬픈데도 억지로 웃는다고 할까. 혼란에 빠져 조커 같은 웃음을 짓게 되는 거지. 하하.

흠…예비 관객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한마디로 편견을 버려라! 백승기의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니 있는 그대로를 느껴 주셨으면 한다.

<인천스텔라>


제목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가 진하게 연상된다. 영화의 시작은.

<시발, 놈> 촬영차 히말라야에 갔을 때가 기획의 시작이었다. 주연을 맡은 손이용과 잔뜩 술에 취해 함께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데 그 광경이 매우 경이로웠다. 당시 손이용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 그의 슬픔이 깊었다. 그래서 영화에서나마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 시공간을 초월해, 블랙홀을 통해 헤어진 가족과 만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인터스텔라>가 나왔고 너무 유사한 콘셉트라 어찌할까 하다가 아예 패러디처럼 제목을 짓게 됐다.

기획 의도에 따라 코믹을 지양(?)했나 보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떠난 아버지를 향한 손이용의 그리움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어떤 경건함 마음이 영화의 베이스라 이런 무드로 가게 됐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내 영화는 모두 진지한 영화였다. 저예산이다 보니 아무래도 말도 안 되는 미장센이 탄생하며 어쩌다 웃긴 상황으로 흐른 거지! 영화는 연인, 가족, 나아가 인류애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들로 별만큼이나 귀한 존재이니 서로를 또 스스로를 귀하게 여겼으면 한다는 거다.

그간 쭉 주연을 맡아온 손이용 배우와 이번에도 함께했다. 전작 <오늘도 평화로운> 간담회 당시 영화를 하면서 배우는 보통 ‘변신’한다고 하는데, 할수록 ‘병신’이 돼 가는 것 같다는 그의 소감에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당신에게 손이용이란.

<숫호구>에서는 섹시 아바타, <시발, 놈>에서는 알몸 원시인, 그리고 <오늘도 평화로운>에서는 머리 한가운데 고속도로를 냈으니… 그는 한마디로 페르소나이자 페로몬이자 페르시아 왕자님? 농담이고, 가끔 말을 안 들어 패 버릴지 고민도 하지만, 내게 향기를 부여하는 페브리즈 같은 존재다.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내 철학처럼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규진’역이 원래는 딸이 아닌 아들로 그가 맡으려 했었다. 영화 속에서나마 아버지를 만나게 하고 싶었으니까. 놀란 덕분에 촬영이 밀리면서 나이가 들어 아버지 ‘기동’(손이용)을 하게 됐다. 그간의 코믹함을 싹 빼고,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남편이자 지극한 부정을 지닌 아버지로 그야말로 ‘변신’했다. 연기하면서 아버지처럼 보이기 위해 제일 신경 썼다고 하더라.

이번 <인천스텔라>의 유머+웃음은 개인적으로 부국장을 연기한 조근직 배우의 말투와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전문 배우가 아닌 데도 참 편안하게 연기하는 분이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 무한의 연기라고 할까. 앞으로 관객이 그분을 계속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극 중 지구와 우주의 통로, 블랙홀이라고 할지 그 역할을 박스가 담당한다. 박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일단은 사랑, 그리고 좁지만 따뜻한 집을 의미한다. ‘기동’의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가 박스이고, 그 사랑의 결실로 낳은 딸 ‘규진’(강소연) 역시 박스를 매개로 ‘승연’(정광우)과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또 훗날 연인과 아버지를 구하러 혼자 우주로 비행을 하게 되는 ‘규진’에게는 하나의 알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알을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성장하는 거다.

예전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박스를 소재로 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들이 박스를 가지고 참 재미있게 놀더라. 창문을 만드는 등 꾸미기도 하고, 피곤하면 그 안에 들어가 자고 말이지. 얇은 종이로 안과 밖이 구분되고, 그 안은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다는 점이 아주 신기했다. 노숙자에게는 박스가 집을 대체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소한 물건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큰 존재가 되는 거지. 극 중 ‘진리는 항상 주변에 존재하지만, 찾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대사와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인천스텔라>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주로 인천에서 촬영했다. 촬영 장소의 소개를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대원들이 도착한 ‘갬성’의 황량한 벌판이 눈에 띄던데, 어디인가.

갬성은 영종도로 인천공항 인근이다. 공항으로 인해 주변의 고도를 제한해서인지, 혹은 산을 통째로 깎았는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여하튼 주변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고 사막같이 넓은 공간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촬영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유료인데 우린 독립영화라고 하니 어느 정도 배려해 주셨었다. 기동의 집은 강화도로 펜션을 통째로 빌렸는데 외진 곳에 있어 예스러운 느낌이 나 미술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ASA(아시아항공우주국) 외관은 인천 월미산에 있는 월미전망대, 내부는 내가 근무했던 인화여고 교무실, 교장실 등이다. 예전의 인연으로 가능했지! 우주선 ‘인천스텔라’가 만들어진 카센터는 친구가 운영하는 공업사이다. 또 몇몇 장면은 인천자유공원 공자상 계단에서 촬영했다. 이곳은 내 영화에는 항상 나오는 곳이다.

자유공원 공자상 계단이 시그니처 로케이션인 듯. (웃음) 마카롱 카페, 모바일게임 '치킨이쪼아' 등 업체 홍보가 깨알 같던데 PPL인 건가.

인천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 공고가 뜨기 전에 일단 나 혼자라도 찍어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시작했었다. 예산은 없고 밥은 먹어야 하니 생각해 낸 것이 PPL을 팔아보자는 거였다. 한 100만 원 정도 금액에 영화 속에서 노골적으로 홍보해주겠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니 꽤 여러 업체에서 제안을 주시더라. 그중 너무 큰 업체나 프랜차이즈 등은 거부감이 들 수 있어 개인, 소상공으로 제한을 뒀다.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돈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지. (웃음) 그렇게 ‘산딸기 크림 봉봉 마카롱’, 티셔츠 브랜드 ‘아픔과 슬픔’, 모바일 게임 ‘고양이 수산시장’과 ‘치킨이쪼아’까지 4곳을 엄선했다.

태아 형상으로 붉게 빛나는 우주의 성운을 비추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IC 1848’이라고 실재하는 성운에 영감받아 만들었다. 성운 자체가 태아 형상 같아 그 위에 태아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덧댄 거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엔딩의 아기는 극 중 어떤 인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빠도 딸도 또 연인일 수도 있다. 넓게 보자면 생명 그 자체다. 부모가 있어 자식이 태어날 수 있고, 또 자식이 있어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그렇게 어렵게 탄생한 존재이니 말했듯 존재를 귀하게 여기라는 거다.

ASA 대원들이 ‘갬성’ 갈 때 타는 우주선이 자동차 모양이다. 현대 스텔라 차종인데, 제목에 맞춘 건가.

맞다. 제목 ‘인천’(人天)스텔라’의 인천은 지명 인천(仁川)과 동음이의어로 우리는 하늘만큼 큰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또 인간이 ‘스텔라’를 타고 넓은 우주로 떠나는 이야기라는 중의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근데! 어제 갑자기 상영예정작 중 우리 영화가 기대 순위 1위에 오르더라. 현대에서 알게 모르게 움직이는 건지도. 후후

하하하… 그 상상력을 다음 작품으로 이어가길! 준비 중인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숫호구>- Super Virgin, <시발, 놈: 인류의 시작>- Super Origin, <인천스텔라>- Super-Nova로 Super 3부작이 끝난 셈이다. 중간에 <오늘도 평화로운>을 하긴 했지만, 그건 중고나라에서 사기당한 후 그 경험을 살려 급하게 만든 거였다. 지금 아이템과 장르를 열어 놓고 구상 중인데, 아직은 이렇다 하게 잡힌 것은 없다.

관객이 놓칠 수 있는 관람포인트를 짚는다면.

인간의 탄생과 성장, 사랑, 희생 네 개의 키워드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생애주기 과정이 다 들어가 있다. 비로 시작한 오프닝과 바다로 끝나는 엔딩은 대기상에 존재하던 물 한 방울이 어떤 순환을 거쳐 바다로 되는지, 그 과정에서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담고 있다. 또 갬성은 인간의 신체 중 난자를, 탐험대는 정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갬성이 4주에 한 번씩 생성하고 소멸하는 콘셉트로 가져갔다. 이렇듯 인간의 탄생과 성장과 사랑과 희생에 대한 꽤 많은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다. 영화를 미리 본 관객 중 행성 충돌 장면을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파악하는 분이 있는 거로 봐 나름대로 어느 정도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

C급 무비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C급 무비의 거장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음, 이번에 C는 Cosmos(우주)를, <오늘도 평화로운>에서는 Community를 의미한다. 여러 사람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었거든. 근데 이것을 묻는 말은 아닌 것 같고! B급도 안 되는 C급이라는 데서 오는 C급은 기분이 나쁘다. (웃음)

지금은 누구나 영화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꼭 개봉하지 않더라도 말이지. 영화를 나누는 A, B, C가 어떤 위계 즉, B는 A의, C는 B의 하위계급이 아니다. 현실에서 A급 영화는 소수의 창작자만이 만들 수 있고, B급은 그보다는 좀 더 많은 창작자가 만든다. C급은 누구나, 핸드폰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수직 개념이 아니라 수평 개념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꾸러기 영화사를 만들 때의 모토가 ‘이왕 못 만들 거면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들어보자’였다. 어떻게 보면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독립영화였던 셈이다!

좋은 얘기, 공감되는 의견이다. 뜬금없지만, 당신에게 영화는 뭘까.

영화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 우주의 크기만큼 좋은 것이다. 영화는 그냥 봐도 재미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 나아가 내가 직접 출연한 영화를 보는 것은 더욱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직접 만든 영화다. 관객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많은 분이 직접 만들어 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너무 재밌어 나 역시 계속하는 중이니까.

마지막 질문!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말했듯 이번에 고1 남학생반의 담임을 처음으로 맡았는데 너무 귀엽다. 무뚝뚝하지만, 다들 순하고 착하다. 그 친구들 보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 영화사 그램

2021-03-24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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