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

2021-03-31|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오는 4월 2일 국내 유일의 산악영화제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여섯 번째 문을 연다. ‘록키-캐나다’를 주제로 한 캐나다 영화 13편을 포함해 43개국 146편을 영남알프스 아래 울주군 일대에서 상영한다. CG가 거의 없는, 자연을 극복하는 현장을 가공 없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산악, 자연, 극기스포츠를 다룬 영화 외에도 한국 독립영화와 가족 영화 그리고 고전 영화를 온·오프라인으로 또 자동차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일군 주역 배창호 감독은 올해로 4회째 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사람과 산,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영화제, 자연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케 하는 울주산악영화제는 배 감독을 위시한 든든한 스탭들 덕분에 지역 주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배 감독과 영화제와 향후 작품 활동 계획 등 관련해 이야기 나눈 소중한 시간을 공유한다.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내외 영화제는 지난해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국면에 맞서 어려운 선택과 해법을 모색해야 했는데요. 올해는 대체로 오프라인 개최를 선언한 모습입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하 움프, UMFF)는 오는 4월 2일, 국제 규모의 영화제로 2021년의 첫 스타트를 끊습니다. 6회째를 맞아 가을에서 봄으로 개최 시기를 앞당겼습니다.

그간 9월에 개최해왔는데 그 시기에 태풍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원래는 지난해부터 봄으로 그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었습니 다. 움프 인근에서 벚꽃 축제가 벌어지고 해서 시너지 효과가 크겠더라고요. 한데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연기, 10월에 진행했었죠.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방역에 힘쓰면서 계획대로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올해의 슬로건은 ‘늘 푸른 산’이에요. 산에 가면 푸르름을 느끼고, 푸르름은 힘과 젊음의 이미지잖아요. 산악영화제를 통해 겨울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시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강릉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영화제를 이끄는 집행위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코로나 국면의 경험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 대체로 온·오프라인으로 병행해 진행했고, 왓챠나 웨이브 등 OTT 플랫폼과 협업했는데 움프만이 자체 홈페이지 내에서 온라인 상영을 소화했어요.

음, 사실 기술적인 부분은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든든한 스탭들이 효율적인 방안을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해요. 움프는 지난해 참가의식을 높이기 위해 처음으로 유료화를 시작했어요. 수익보다 영화제를 많이 알리고 참여 유도가 그 목적이라 올해도 5,000원에 온라인 관람권을 사면 100여 편이 넘는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좋죠?(웃음) 지난해 온라인 상영을 해보니, 외국에서도 접촉할 수 있고 또 오프라인 방문 때는 시간 제약으로 볼 수 없던 영화를 온라인으로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다는 평가가 꽤 있었어요. 평소 산악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께 좋은 기회였다는 평도 있었고요.

저도 구입하려고 합니다! 폐막작 <총>을 보고 싶었거든요. 이번 영화제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올해는 43개국 146편을 상영합니다. 개막작은 < K2: 미션 임파서블>(연출: 스와보미르 바트라), 폐막작은 <총>(연출: 파티 오잔)이에요. 움프는 ‘주빈국’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큰 산맥이 있는 국가 중 한 나라를 주빈국으로 선정해 해당 국가의 영화와 문화를 소개해 왔는데 올해는 ‘록키-캐나다’를 선정했습니다. <월 파워>와 <멍키 비치> 등 캐나다 영화 13편을 준비했어요.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한 영화제라 코로나 국면에서 영화 수급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다소 걱정했던 부분인데 수급이 원활하게 잘 됐습니다. 움프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대부분이 산악, 자연, 극기스포츠를 다루지만, 한국 독립영화, 가족영화로 구성된 특별 섹션도 있거든요. 또 <영광의 뒤안길>(1976), <스파르타쿠스>(1960) 등 내가 추천하는 고전영화로 구성된 섹션도 마련했습니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는 영화제에서는 드물게 인터미션을 넣었어요. 모처럼 예전에 극장관람하던 기분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움프는 국내 유일의 산악영화제로서 산악문화의 흐름과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영남알프스를 찾는 산악인 사이에서는 나름의 코스(?)로 자리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웃음)

영화제 기간에 맞춰 산행을 계획하는 동호회도 꽤 있고, 산행 일정이 맞으면 영화제를 하나의 코스로 끼워 넣기도 하더군요. 또 산행 애호가는 영남 알프스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리기도 하고 인근에서 캠핑하고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산악영화가 좋은 점은 CG가 거의 없거든요. 자연을 극복하는 현장을 가공 없이 접할 수 있는 거죠. 히말라야부터 파타고니아, 아마존 등 전 세계의 자연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좋아들 하십니다.

움프를 맡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산악영화제가 이미 잘 정립돼 있더군요. 세계에 약 30여 개의 크고 작은 산악영화제가 있고, 연맹도 갖춰져 있고 네트워킹이 활성화돼 있어 흥미로웠어요.

영화제의 생명은 지역사회와의 호흡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움프는 반응이 어떤가요.

인근에 지난해 프리(pre)형식으로 개최된 울산국제영화제가 있고, 또 울산 반구대산골영화제도 존재하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부산국제영화제도 있고요. 혹자는 영화제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표하나 그 수와 종류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관건은 영화제마다 정체성을 가지고 역할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울주와 울산 인근 지역에 사는 분들이 움프에 재미를 들인 분이 꽤 있고, 지난해를 거치며 긍정적으로 더 가깝게 자리잡았다고 봐요. 울주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고, 세계적인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 지역민의 관심과 자부심이 높습니다. 이를 성장동력으로 한 내부의 열기가 높아지고, 타지에서 꾸준히 찾아준다면 움프는 성공적으로 그 이름을 이어갈 것입니다.

지난해 야외 자동차극장의 호응이 좋았다고요.

자동차 극장을 운영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로케이션 덕분이죠. 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치러지고 극장이 있는 복합웰컴 센터 밑으로 넒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거든요. 거기에 야외 LED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상영합니다. 자연이 영화의 배경이 된다고 할까요. 어울리는 영화를 틀으면 정말 장관입니다. 올해는 자동차극장과 더불어 캠핑하면서 영화를 즐기는 별빛야영장-캠핑패키지를 마련했어요. 영화제 즈음에는 마침 꽃들이 만개할 시기라 풍경도 날씨도 야외 활동에 제격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어린이 클라이밍 체험, 지역 아티스트와의 협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움프의 예산 규모와 조달은 어떻게 되나요.

90%가 울주군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10% 정도를 외부 조달합니다. 오프라인으로 정상적으로 개최 시 약 25억 원 상당의 비용이 드는데요, 지난해의 경우 온라인으로 돌리고 외부행사 축소와 게스트 초청이 없어 약 8억 정도 감소한 17억 원으로 치렀어요. 올해는 방역상 해외 게스트 초청은 힘들고 국내 게스트도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래도 정상 개최라 평년 수준의 예산을 사용할 것 같네요.

움프를 이끄는 든든한 스탭도 소개해주세요.

제천과 전주 등을 거치며 영화제에서 업력이 높은 홍영주 사무국장과 이정진, 김세진 프로그래머가 든든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영화제의 업무 특성상 단기 스태프를 아무래도 많이 활용합니다.


◆ 감독 배창호

코로나 이후, 혹은 코로나 이전부터 느낀 영화계의 흐름이 있다면 짚어주세요.

홈스트리밍이 늘어나면서 이전부터도 제작환경의 변화를 많이 체감했었어요. 코로나로 그 변화가 더 가속되고 있고, 극장은 크게 타격을 받았죠.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라면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해의 흐름을 보니 스타시스템에 기댄 영화보다 중간 사이즈 정도의 영화가 많이 나왔더군요. 대작은 아무래도 몸을 사리게 되는 거죠. 또 VOD나 OTT로 볼 수 있는 외국영화가 워낙 쟁쟁하니 이래저래 상업영화를 기획하는 게 힘들겠다 싶어요.

극장의 장래는 정녕 어두운 걸까요. (웃음)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할 것 같아요. 50년대 미국에서 TV가 활성화되면서 영화(극장)에 큰 위기가 닥쳤지만, 대형스크린과 대작 영화로 관객을 다시 불러 모았거든요. TV로는 커버할 수 없는, 영화적인 스펙터클이 넘치는 작품이라면 관객이 극장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해요. 하지만, 한편으론 디지털 기술과 사운드의 발달로 성능 좋은 홈씨어터 구비가 보편화되면서 과연 예전처럼 극장을 선호할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화제작이나 좋은 작품은 군중 관람의 묘미가 있거든요. 어두운 공간에 앉아 고조된 기분과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거죠.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보며 스크린에 집중할 때의 희열이 있잖아요? 얼마 전 경험인데, 움프 복합웰컴센터에 최신식 극장이 두 개 있어서 가끔 거기서 개봉 영화를 보거든요. 테마도 진지하고 아주 잘 찍은 영화인데 나를 포함해 단 두 사람이 그 영화를 봤어요. 예전 같으면 그래도 많이 봤을 텐데 말이죠. 코로나 시기엔 웬만해서는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떤가요.

오래전, 2000년대 중반부터 준비해 온 영화의 시나리오를 끝낸 상태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혼자 자료조사하고 시나리오 쓰고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그간 예수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 여러 편 있지만, 그것들이 놓친 부분이 있고 또 지금은 기술적으로 연기적으로 더 발전했으니 (예수의) 전 생애를 다룬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로케이션에 외국 배우가 출연해야 하니 아마도 외국 합작으로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규모는 스타캐스팅만 아니라면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구체화한 것은 없습니다.

계획대로 진행하셔서 감독님의 또 한편의 역작으로 남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독님께 영화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차분히 기회를 기다리며 체력을 비축하는 중입니다. 영화란,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나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말이죠. 유흥으로 때론 현실의 힘듦을 날려 버리려고 혹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잖아요. 그때 영화는 넓고 깊게 우리 마음에 양식으로 자리잡아요. 그게 영화가 예술로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영화라는 말이 낯선 단어가 되고 해외영화제의 수상 여부가 예술성의 척도가 돼 버린 요즘이지만, 영화는 친밀하고 쉽고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예요. 영화를 통해 간접경험과 지식을 쌓고, 해학을 맛보고, 삶의 왜곡된 시선을 벗어나게 되는데 이런 영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죠.

만약 영화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다른 것은 할 줄도 모르고 바란 적도 없어서요. 생각해보면 소설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무엇인가요.

일상에서든 어디서든 염려 없이 편하게 있을 때 행복하죠. 즐겁게 밥을 먹는 것, 울주에 내려가서 스탭들과 호흡 맞추는 것, 산에 가서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 가족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 등이요.


사진_ 이종훈 실장(스튜디오 레일라)

2021-03-31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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