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목말라 하는 뜨거운 청년 <자산어보> 변요한

2021-04-05|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머나먼 흑산도, 지식에 목말라 하는 어부 ‘창대’가 있다. 그가 말하길 모름지기 사람은 태어났으면 ‘사람 노릇’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글공부’가 필수다. 어렵게 구한 책을 밤새워 읽고 또 읽어도 그 논리를 깨우치지 못했던 창대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한양에서 유배 온 양반 ‘정약전’, 한마디로 서학쟁이다. 이준익 감독이 완성한 흑백 사극 <자산어보>는 양반이자 대학자인 정약전과 청년 어부 창대가 만나 우정을 쌓고 마음을 나누며 어류서 ‘자산어보’를 완성해 나가는 이야기다. 내면에 뜨거운 마음과 큰 뜻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고 ‘창대’를 소개하는 변요한을 화상으로 만났다.

촬영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밝힌 바 있고, 얼마전 시사회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자산어보>는 대부분의 배우가 (어느 순간) 느끼게 되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영화였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촬영 당시의 모습이 떠오르며 뿌듯하고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고맙고 그랬다. 또 한 자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크게 느껴졌다. 눈물을 잘 참는 편인데 못 참겠더라.

‘창대’(변요한)는 ‘자산어보’에 서술된 몇 줄을 바탕으로 창작된 인물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캐릭터를) 구축해야 했는데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창대는 (책의) 서문에 잠깐 언급되고 말지만, 정약전 선생이 얼마나 큰 인물인지를 표현하는 인물이다. 어부지만 내면에는 뜨거운 마음과 큰 뜻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접근했다. 이준익 감독님이 ‘뜨거운 사람 옆에 뜨거운 네가 있고 내가 있다’고 하셨는데 연기하는 동안은 이에 걸맞게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창대도 그렇게 만들어나갔다.

창대가 정약전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은 세월이 흐르며 변해가는데 어떻게 파악했나.
처음에는 사학쟁이로, 그 후엔 선생님으로 이후엔 벗으로 변모해간다. 이준익 감독님의 스타일이 어떤가 하면 일방적으로 디렉션을 주기보다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편이다. 덕분에 그 섬의 주민으로 생활하며 서로 부딪히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벗이 돼 있더라. 창대의 감정을 특정하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갔던 것 같다.

창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창대를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그에게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땠는지 들려준다면.
시나리오를 받으면 일단 나와 캐릭터의 닮은 구석을 찾는 편이다. 이번 창대도 나와 분명히 닮았는데, 그 뿌리는 알겠는데 어떻게 파생할지 그 방법은 잘 모르겠더라. 생각해보니 창대는 나랑도 닮았지만, 다른 많은 이들과도 닮았다. 꿈이 있고 야망이 있어 달려가지만, 한편으론 그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 등. 나를 포함해 꿈을 좇는 많은 청년을 주변에서 접하면서 창대의 뿌리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때는 현장에 들어가서부터였다. 설경구, 이정은, 강기영 선배 등 여러분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창대의 마음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인물에 묻혀 그 인물이 지닌 향기를 내려고 했고, 또 그렇게 되도록 시나리오가 잘 짜여 있었다.

흑백으로 완성된 작품이 새로운 세계처럼 다가왔을 것 같은데, <자산어보>가 흑백이기에 가장 부각된 점은 무엇일까.(웃음)
흑백이 주는 느낌은 연기적으로는 인물의 주름, 표정, 목소리, 감정 등이 한층 세세히 보인다. 풍경의 형태도 명확하지만, 그 외 모든 것, 아주 작은 것조차도 다 보인다. 잘 보면 지나가는 벌레들도 보인다니까!

얘기했듯 (흑백은) 목소리와 표정이 더욱더 생생하게 부각되는데 부담되지 않던가.
사실 처음에는 겁이 났었다. 흑백이라 지금까지 미처 보이지 않던 부분이 잡히다 보니… 한데 첫 모니터링을 한 후 과감히 내려놓았다. 이해되지 않는 대사는 하지 말고, 조금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 연기를 하고자 마음먹으니 심적인 부담은 가시더라. 거짓으로 연기하지 않아 매우 좋았던, 두 번은 없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촬영 들어가기 전 흑산도를 방문했다고 하던데, 정약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어떤 느낌을 받았나.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자연스럽게 가게 됐다. 차로 이동 후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굉장히 먼 곳이었다. 정약전 선생이 참 멀리까지 유배 왔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마음이 좀 안 좋았다. 가이드와 함께 선생이 다니시던 길과 지역 등을 다니며 여전히 흑산도 주민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분의 발자취를 느꼈고, 이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심했던 것 같다.

정약전 역의 설경구 배우가 대선배인데 함께한 소감은.
이준익 감독님과 설경구 선배, 두 분을 한 번에 만나서 엄청나게 설레고 흥분했었다. 개인적으로 기쁜 건 기쁜 것이고, 촬영에 들어가서는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경구) 선배님은 아침에 일어나 줄넘기 천 개를 하면서 캐릭터에 맞는 체형을 만드는, 철저하신 분이다. 이번엔 감독님이 주문한대로 선비로서의 모습을 갖추려 최선을 다해 그 긴 대사를 대본도 안 보고 한 번에 소화할 정도였다. 그런 선배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소꿉친구 ‘복례’와 부부로 연을 맺게 된다. 복례를 연기한 민도희 배우와의 호흡이 귀엽더라. (웃음)
첫 촬영부터 소꿉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수중 촬영이었는데 처음부터 나를 엄청나게 리드해서 믿고 따라가면 됐었다. (웃음) 딱 극 중 복례와 창대의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극 중 두 사람이 결혼식 할 때 살짝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신을 촬영할 당시 현장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정도로 케미가 좋은, 응원하고 싶은 부부가 아닌가 한다.

사극 달인 혹은 사극 전문가라고 평가받는 이준익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분이던가.
최고다. 감독님은 장점만 보시고 약점은 눈감아 주신다. 사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객관적인 시선과 주관적인 시선을 조화해 힘을 줄 때는 주면서도 모든 배우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신다. 감독님과 다음에 작업할 배우가 부러울 정도로 매우 훌륭하신 분이다.

<자산어보>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사극과 <자산어보>와의 차별점을 꼽는다면.
감독님께서 이번에는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처럼 봤다고 하셨다. 즉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미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셈이다. 한 인물 안에 깊게 들어가 그가 이룬 업적은 물론 기뻐하고 분노하고 아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친근하게 영화 속에 펼쳐 놓는 것은 소박해 보이지만 위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열 명을 사귀는 것보다 한 명의 친구를 깊게 사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감독님의 시선과 접근에 깊게 공감했다.

촬영이 고된 한편 자연 속에서 힐링의 한 때를 보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창대를 연기하며 배 타고 바다에도 나가고 또 오랜만에 하늘과 별을 바라봤는데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절경이었다. 하루하루 날씨가 어떨지 예상하지 못해 마음 졸이는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당시 치아밖에 안 보일 정도로 새까맣게 탔었는데 그것조차도 너무 좋았다.

창대가 어부인 만큼 물고기를 잡고 다루는 장면이 많은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수중 신과 배 타는 장면이 많아 실내수영장에서 수영 연습을 꽤 오랫동안 했고, 당시에 맞는 노 젓는 기술 등을 따로 익혔다. 또 살면서 어부를 언제 할까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전문가의 수업에 늦지 않게 나가 열심히 배웠다.

대형 돗돔을 잡고 이후 등에 짊어지고 언덕길을 올라 약전의 집에 이르는 시퀀스는 영화 속에서 가장 코믹하면서도 독특한 장면이다.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준다면.
언덕부터 약전의 집까지 롱테이크로 갔는데 정말 무거워서 주저앉을 정도였다. 대사가 아니라 침이 나오더라니까! (웃음) 또 각종 어류를 취급하면서 손에 가시가 박히기도 했었고, 촬영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피가 흐르고 있길래 한번 쭉 빨아 뱉어버리기도 했다. 그게 창대의 자연스러운 삶이 아닌가 싶더라.

전라도 사투리를 어색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구사하던데 많이 연습했겠더라.
촬영 전 흑산도를 방문했을 때부터 가이드 선생님과 사투리로 대화했고,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주변 사람을 총동원해 도움받았다. 사투리를 너무 깊지 않게,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연습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는다면.
혼자 공부하는 창대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같은 구절만 반복해 읽는 장면이 있다. 옆에서 듣던 어머니(방은진)가 자신이 외울 정도라고 거들고. 어느 정도 유머 있게 표현됐지만, 창대의 갑갑한 마음이 잘 드러난, 사실은 아픈 장면이다.

창대를 통해 배운 점 혹은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음… 용기? 만약 내가 창대였으면 어떨지 많은 생각을 했고, 그 감정을 창대에 묻히고 싶었다. 그는 뜨겁고 누구보다 청년의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알았고, 앞으로도 감사한 삶을 살고 싶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창대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꿈을 갖고 용기를 가져라, 실패해도 부딪혀라! 실수를 눈감고 인정해주는 친구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완벽한 삶일 것이다.

가볍게 묻자면, 창대-약전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스승이자 벗으로 자리하는데, 당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까.
내 주위에 그런 좋은 어른이 운이 좋게도 다섯 분 계신다. 그중 두 분이 이준익 감독님과 설경구 선배님, 나머지 세 분은 비밀로!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섰다. 창대를 통해 청년 변요한을 돌아본다면.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싶은데…말했듯 창대와 닮지 않았나 싶다. 반항심도 많았고, 지금도 반항하고 있고(웃음), 방황도 하고 고민도, 외로움도 많다. 그러면서도 일은 잘하고 싶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런 감정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덕분에 시야가 좀 더 넓어진다는 생각이고, 나아가 더 넓게 여러 삶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에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우리집 강아지, ‘복자’와 산책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친구의 눈으로 나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할까. 또 4년만에 영화로 인사하는 요즘, 설레는 기분이다.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1-04-05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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