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변해도 세대는 변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몰라요> 이환 감독

2021-04-16|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나, 심의에 걸려 ‘청불’
- 70년대든 90년대든 지금 2020년이든 그 세대 고유의 문화는 변하지 않아
-<박화영> 속 ‘세진’ 캐릭터 확장, 그의 웃음 속에 눈물, 분노, 호소 모두 담겨 있어
-‘재필’(이환)은 그토록 싫어하는 폭력적인 형과 가족을 닮아가는, 기성세대의 악습을 답습하는 인물
-궁극적으로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어, 켄 로치의 <달콤한 열여섯> 좋아해
-스탭과 배우와 함께한 결과물 <어른들은 몰라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요즘, 감사하고 행복해


전작 <박화영>, 이번 <어른들은 몰라요> 모두 청소년의 일면을 현실적으로 다루나 정작 그들은 볼 수 없는 등급이다. ‘어른’에게만 전달하고 싶은 어떤 의도가 있는 건가.
아니다. 10대 청소년과 어른 세대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원래 의도였다. 다만 영등위(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다 보니 의도치 않은 결과 즉, 청소년 관람불가가 된 거다. 내가 수위를 넘나들게 만든 것인지, 사회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고민하게 되더라.

어떤 면에서 청불 등급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표현을 순화하거나 혹은 편집을 거쳐 등급을 조정해 볼 생각은 없었는지.
등급을 낮추기 위해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순화해 만들고, 그 결과물을 청소년이 본다면, 그들(청소년)의 공감을 끌어내기보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타협하기보다 기다리는 편이 낫겠더라. 지금은 성인만 볼 수 있지만, 당장은 못 보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심사평을 보면 ‘저해한 표현과 흡연, 음주’ 등이 ‘청불’의 대체적인 이유였다. 솔직히 시대에 동떨어진 판단과 평가가 아닌가 한다. 음주나 흡연을 청소년에게 권장해도 좋다는 게 아니라, 많은 청소년이 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 않나.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를 보고 모방해 더 먹고 더 피지도 않는다. 요즘 청소년은 스스로 잘 판단하는 친구들인데, 심의 기준은 예전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웃음)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 ‘욕’은 정말 많이 하더라.
그들에게 욕은 성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일종의 신조어 혹은 은어라고 할까. 신조어는 성인에게 처음에는 마치 ‘외계어’처럼 취급되지만, 이후 전파되면 흔하게 사용되지 않나. 욕도 비슷한데 다만 ‘욕’이다 보니 성인은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예를 들면 흔히 쓰는 ‘씨발’은 짜증 날 때도 또 화가 날 때도, 또 장난처럼도 쓰는데 발음만 같지 내용은 다른, 일종의 언어인 셈이다. 트렌드와 동떨어진 기준만을 고집한다면, 현실과의 괴리가 커질 뿐이다. 지나치게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어른들은 몰라요>


# <박화영>이 또래들 사이 ‘엄마’를 자처하는 ‘박화영’을 통해 일탈 청소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어른들은 몰라요>는 가출 청소년과 임신의 문제를 다룬다. 2019년 촬영한 영화는 지난해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메가박스상, KTH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시작은.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우선, <박화영> 당시 100여 회가 넘는 GV를 통해 관객과 많은 소통을 했었다. 어느 날 GV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여성 두 분이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년 쉼터에서 일하는 선생님으로, 보러 오기를 참 잘했다고 하면서 이런 영화를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10대 영화를 한 편만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그러겠다고 대답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었다. 그러던 중 어느 시기에 임신중단(낙태)에 관한 찬반 논쟁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올랐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찬성과 반대 그 어느 편에 설 수가 없더라. 그래서 영화로 이 화두를 가져가 관객과 함께 이야기해보자 했다.

<박화영>에 등장한 ‘세진’(이유미) 캐릭터를 확장했다. 그는 항상 밝아 보이는 친구인데, 그를 주목한 까닭은.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세진’ 캐릭터와 디졸브됐다. 두 시간 동안 이유미가 어떻게 관객을 이끌지, 어떤 연기 스펙트럼을 펼칠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영화가 1회만 상영해 많은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GV 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박화영>보다 좀 더 보편적인 것 같다”고. 그런 바람을 가지고 시작한 영화라 내 의도와 시도가 통한 것 같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몰라요>


# 18세 ‘세진’(이유미)은 학교 선생과 오빠처럼 친하게 지내다 덜컥 임신하게 된다. 교장 선생 등 학교 측이 가하는 무언의 압박과 묘한 관계에 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결국 세진은 거리로 나선다. 동생 ‘세정’(신햇빛)만을 홀로 남긴 채 가출한 그는 가출 4년 차인 동갑내기 ‘주영’(안희연), 위기의 순간 구해준 ‘재필’(이환)과 신지를 만나 ‘유산’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극 중 세진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울고 화내고 아파해야 할 순간조차 키득키득 웃는 것으로 회피하는 모습이다. 마음 아픈 대목이다.
학생이기 전에 10대에 아이를 가졌고 그렇게 되기까지 사회적 약자로 많은 경험을 한 결과일 것이다. 의식해서 무디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도 모르는 새 익숙해진 거겠지. 뭔가 날아와 맞아도 아픈지도 상처받는지도 모르고 반은 자포자기한 것일 수도 있다. 웃으면서 울기도, 웃으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또 웃으면서 살려 달라고 외치기도 하는, 세진의 웃음 안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있다.

이유미는 시나리오를 읽고 ‘세진’을 보고 “얘, 왜 이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고.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난다. 이대 근처에서 만나 그런 얘기를 나눴었다. 그 질문에 “얘가 왜 이러는지는 네가 알아봐야지”라고 답했더니 웃더라.

각본을 직접 썼다. <박화영>도 이번도 10대의 문화에 밀착한다는 인상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여학생을 중심에 놓는데, 어른으로 남성으로 남다른 관심과 주의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시대는 변해도 세대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위 세대와 내 세대 그리고 아래 세대가 유년시절을 보내는 시대(년도)는 다를지라도 그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는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다. 70년대든 90년대든 지금 2020년이든 그 세대 고유의 문화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지. 매체가 발달하면서 불쑥불쑥 문제가 튀어나와서 그렇지 그 문제들이 지금, 이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면화 되지 않고 감춰진 시대도 있을 것이고, ‘왕따’ 혹은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두드러진 시대도 있을 거다. 내 유년기의 경험과 상황과 감정, 보고 들은 무수한 이야기들 그리고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리서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10대의 눈을 빌려왔지만,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기보다 인간이라는 면으로 접근했다.

세진의 동생 ‘세정’(신햇빛)은 나이는 어리지만, 언니를 오히려 보듬는 듯 아주 의젓한 모습이다.
우선 ‘세정’이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박화영>에서는 엄마-화영, 이번에는 세진-세정을 통해 가족의 정서를 드러내려 했다. 만약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세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극 중 나이가 많은, 세진과 친구들 그리고 어른들은 다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세정만 혼자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인물이다. 영화에 보편성을 부여하면서 어떤 구원의 이미지로 역할 하는 캐릭터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강하게 든 대목이 두 곳이 있다. 우선 초반부, 세진의 친구가 컨테이너에 깔려 죽는 부분이다. 친구의 죽음 후 세진은 집을 나간다.
세진을 임신시킨 선생, 그 선생의 아버지인 교장 그리고 같은 임산부인 교사는 세진을 괴롭히고 거리로 모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어른들이다. 세진의 상황에 개입은 하지만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세진이 집 밖으로 밀려 나가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세진이라면 오히려 더 뻔뻔하게 학교에 잘 다녔을 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세진을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동성의 친구다. 세진을 좋아하지만, 굉장히 거칠고 함부로 대한다. 마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처럼. 데이트 폭력 같은 테두리 안에 갇혀 있던 세진이, 더 이상 참지 않으려 할 때 공교롭게도 친구가 갑작스럽고 끔찍하게 죽는다. 결국, 세진은 집을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주영’과 ‘재필’ 등을 만나 함께 다니나 온전히 그들을 믿지는 못했을 거다.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 확 다가오는 표현이다. ‘재필’은 어떤가. 세진을 어떤 식으로든 돕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후반부에 폭주해 세진을 죽이겠다고 덤벼든다. 너무 급격한 감정의 변화가 아닌가. 재필을 직접 연기했다.
그는 사실 좀 기능적인 캐릭터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웃음) 파란 머리카락 등 외적으로는 누가 봐도 불량하고 어디 가서 지지 않을 것 같은 친구인데 한 대 맞고 바로 뻗어버리지 않나. 세진을 도와준다고 하는 행동도 영 찌질하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친형에게 데리고 갔다가 친형이 세진과 주영을 이용하려고 하자, 경찰에 신고하고 이후 형에게 그 사실을 들켜서 심하게 두들겨 맞는다. 상처받고 스스로에 실망하고, 그 감정을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전환한다. 결국 그토록 싫어하던 폭력적인 형과 가족을 닮아가는, 기성세대의 악습을 답습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지. 반면 그런 세진과 주영은 그 길을 거부하는 인물이고.

# 어릴 때부터 연기에 몸담은 배우 이환, 그를 대중에 각인한 작품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2009)의 ‘영재’다. 폭력을 증오하지만 결국 폭력 속으로 들어가는 인물이다. <암살>과 <밀정>에 참여하면서, 배우로서 필모를 쌓아가던 그는 각본, 연출, 제작까지 담당한 <박화영>(2018)을 선보이며 크게 반향을 일으킨다. 연기와 연출, 그리고 글 작업까지 도맡아 하는 그가 영화에 담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음지라고 할지, 소외된 청소년의 일탈적인 면을 거칠고 사실적으로 다뤘다. 차기작은 어떤 이야기인가.
지금 트리트먼트만 나온 상태다. 남성 위주의 범죄드라마로 처절함이 없지는 않겠지만, 오락 영화가 될 것 같다. 1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과는 다른 인간관계 혹은 가족관계의 결여가 담길 것이다.

이야기와 장르를 떠나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10대가 성장하듯 20대에게도 30대에게도 성장은 있다. (내가) 더 나이 들면 40대, 50대에도 성장한다는 것을 느끼겠지, 아마도. (웃음) 성장의 원동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대나 30대의 성장영화를 꼭 한번 찍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가족 간에 얽히고설킨, 솔직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바람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가족 이야기가 있다면.
많은데… 꼽는다면 켄 로치 감독의 <달콤한 열여섯>(Sweet Sixteen, 2002)이다. 이번에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에게 보라고 권했었다. 실제로 비 연기자들이 연기한 작품이라 보면 좋을 듯싶었거든.

이번 ‘재필’도 맞춤옷 같더라.(웃음) 연기, 연출, 글 작업을 겸하고 있다.
연기도 연출도 재미있다. 이번에 인터뷰하는데 어떤 기자가 오래 한 일은 배우, 행보가 좋은 일은 감독, 이렇게 정리하는데 정곡을 찌른 듯해 ‘그렇지’ 하면서 수긍해버렸다. (웃음) 예전에는 아는 감독님들이 같이 하자고 연락도 주셨는데 요즘에는 그냥 네 것 찍으라고 하신다. 글 작업은 고통스러운데 그만큼의 쾌감이 크다.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가져가고 그 개연성을 토대로 내 생각을 전달하면서 한 씬 한 씬 완성할 때의 희열이 있다.

가볍게 묻자면, 여러 작업을 병행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상당할 텐데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해소한다. 현장이라는 게 문제가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서로서로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같이 모여 재충전하고 위로하는 거지. 작업을 안 할 때는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분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즐겁게 보내며 서로를 지지한다. <박화영> 팀과 <어른들은 몰라요> 팀도 아주 친하게 지낸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개봉을 앞둔 요즘, 내게 기대를 하고 나를 지지하는 주변 분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는 생각에 기분 좋다. 또 여러 스탭과 배우들과 함께한 결과물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쁘고 감사하다.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2021-04-16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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