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잘살아 볼 만하다고 느꼈으면”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윤지련 작가

2021-05-24|박꽃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꽃 기자]




윤지련 작가는 <꽃보다 남자>(2009) <엔젤 아이즈>(2014) 등 TV 방영된 로맨스물 드라마를 집필했다. 넷플릭스와의 만남이 성사된 건 ‘유품 정리사’라는 소재를 다룬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로 인해서다. 대중의 시름을 잊게 하고 판타지를 제공하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책무’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사건을 기민하게 감지하며 살아온 창작자로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펜을 들었다. 공장 비정규직 청년의 허망한 죽음과 치매 노인의 비참한 고독사 등, 여섯 명의 고인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담겼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유와 위로가 필요한 전 세계 시청자에게 ‘아픔으로 시작하지만 반창고처럼 붙여지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윤지련 작가는 “세상 잘살아 볼 만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진실한 집필관을 전해왔다.

TV 로맨스드라마 <꽃보다 남자> <엔젤아이즈>를 집필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는 이전 작품보다는 무겁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를 다룬다.
첫 번째 미니시리즈가 <꽃보다 남자>여서 그런지 많은 분이 내 강점이 로맨스물에 있다고 봐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데뷔 이후 작가로서 다뤄온 소재(관심사)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로맨스물은 좀 의외인 부분도 있다. 나는 “내가 로맨스물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작가였다.(웃음)

시청자 입장에서는 작품 세계의 변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대중의 시름을 잊게 하고 판타지를 제공하는 게 드라마 작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힘들더라. 이게 대중에게 들려줄 만한 좋은 이야기인가? 묻게 되는 회의의 시간이 길어졌다. 갈수록 높아지는 고민의 허들을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작품 세계가 변화했다고 하기)보다는, 그런 과정에서 사회적 이슈나 그 공기를 느끼는 나의 시각이나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아마 내 심리 상태가 그랬기 때문에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에 꽂힌 것 아닐까.


당초 TV 드라마 제작을 고려했다면 여러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 드라마는 공공재의 성격을 띠는 측면도 있다. 고단함보다는 그 고단함을 잊게 하는 오락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드라마화되기 힘들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기 어려웠다. (프로듀서, 제작 스태프 등) 여러 사람의 능력을 빌려 쓰는 부족한 드라마 작가의 입장이다 보니 고심이 컸고 좌절도 많이 했다. 작품 자체를 포기하려는 찰나에 넷플릭스가 찾아왔는데, 거의 유일하게 작품을 호의적으로 생각해준 곳이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생각했다. 넷플릭스가 작가의 기획 의도와 방향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줘 고마운 마음이다.

기획부터 제작 돌입까지 그 진행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면.
2015년 하반기 김새별 작가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봤다. 유품정리사가 현장에서 어떤 마음을 갖는지, 유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평소 알고 싶었던 것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귀한 소재를 이야기로 들려준 김새별 작가님에 대한 예우와 감사를 표하고 싶기도 해서 드라마로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가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 상세한 인터뷰를 했다. 그분들의 원형이 된 일본 유품 정리사에 대한 기사와 책도 접했다. 이후 넷플릭스와 만났고, 8~10개월 동안 대본을 집필했다. 완결 이후 작품을 잘 찍어주실 감독님을 찾았고 김성호 감독님과 인연이 닿았다.

시청자가 가장 처음 만나는 건 공장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비정규직 청년의 이야기다. 다리에 큰 상처가 났지만 제때 치료하지 못해 파상풍으로 고시원 방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 에피소드를 가장 최초에 배치한 연유가 있을 것 같았다.
시리즈에는 총 여섯 분의 고인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20개 넘는 고인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추리고 추리고 또 추렸다. 그 뒤에는 어떤 순서대로 배치해서 이야기를 소개할지 고심했다. 1화는 어떻게 보면 작품의 첫인상이기도 하니까, 의미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재미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순서에 대한 내부적) 논란도 굉장히 많았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이었던 그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로가 필요한 고인이 있다면, 그건 비정규직 김 군일 것 같아서... 시청자가 접하기에 조금은 어렵고 힘도 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정했다.


치매 걸린 노인의 고독사, 남자에게 살해된 20대 여성, 친모를 찾아 한국에 온 해외 입양아의 죽음 등 여러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 가장 정성껏 소개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이제훈 배우 말마따나 안 아픈 손가락이 없을 정도다. 너무나 안타깝고 전부 마음이 가는 이야기라 하나만 고르기는 힘들다. 다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해외 입양아인 ‘매튜’의 스토리를 쓸 때였던 것 같다. 이전에도 해외 입양아 취재를 한 적 있기 때문이다. 글로 쓰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상황을 팔로우하던 중에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집필했다. 그 시간 동안 해외입양아에 대한 또 다른 가슴 아픈 사연이 사회면 기사로 나오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글쓰기를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작품을 위해 실제 유품 정리 현장에 취재를 하러 간 적도 있을 것 같은데.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동네의 원룸형 임대 아파트에서 살던 70대 노인 고독사 현장을 찾았다. 오랜 병치레에 지쳐서 스스로 좀 더 빨리 생을 마감한 어르신의 사망 현장이었다. 발견이 너무 늦어서 현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꼭 가보고 싶었다. 어떤 ‘각오’를 했다기보다는, 그 또한 그분이 남기고 간 흔적이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살아계실 때는 그저 생활하면서 늘 썼던 용품일 텐데 그게 돌아가신 뒤에는 유품이 되더라. 현장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도 유품을 보니 이분은 젊어서 이런 일을 하셨겠구나, 가족은 어떻구나, 무슨 병을 앓았구나, 얼마나 아팠고 힘들 때는 무엇을 하셨구나 다 알게 됐다. 그 경험이 작품을 집필하는 데 아주 커다란 힘이 돼줬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취재하고, 집필하는 등 작가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넷플릭스에서는 작품 정체성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작가를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과거에 비해 활동 무대가 더욱 확장된 환경에서 작가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가.
작가에게는 발의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기존과는) 좀 다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한정된 플랫폼과 채널이 한계로 작용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것 같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만 보더라도 “넷플릭스니까 만들었겠네”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소재에 속박되지 않았으면 하는 갈증이 있는 작가에게는 굉장히 좋은 환경이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좋은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누가 나한테 알려줬으면…(웃음) 드라마 작가는 다른 작가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시청자가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작품을 보기 때문이다. 보고 났을 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된다는 게 내 첫 번째 생각이다. 두 번째는, 내 작품을 보고 그래도 세상이 잘살아 볼 만한 곳이라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창작이 아닌 소비를 할 때는 어떤 작품을 즐겨 보나.
인간에게는 분명히 악한 속성이 있고, 그런 게 드라마에 재미를 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나도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착한 작품이다. 특히 딜레마가 큰 작품을 좋아한다.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면서 자기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라 그 과정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더 좋은 것과 덜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들의 고민을 다루는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와 닿는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의 시즌2 집필 계획은.
시즌1을 기획할 때 이미 시즌2 얘기도 일부 논의됐다. 시즌2를 위해 (에피소드를) 아껴 두자, 그때 되면 이런 이야기도 더 할 수 있겠지, 하는 논의가 굉장히 많았다. 그러니 여러분의 사랑에 힘입어 더 좋은 에피소드를 소개할 수 있는 시즌2를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출연한 배우들도 마치 공공프로젝트를 수행하러 오신 분들처럼 진심으로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 시즌2 촬영하면 꼭 오겠다고 말하더라. 나 역시 슬픈 고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편 한편이 전부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힘들었던 무언가를 극복한 시간이었다.

또 다른 차기작도 준비 중인가.
러브 스토리를 더는 못 쓸 것 같았는데…(웃음) 여러분들이 내게 기대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곧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어제, 오늘 시청자들이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많이 봐줘서 넷플릭스 오늘 한국의 top10 콘텐츠에서 1위한 것.(웃음)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치유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굉장한 아픔과 불행 안에서 작품의 에피소드를 보며 감응하고 작은 위로를 받는 분들이 있다. 아픔으로 시작하지만 반창고처럼 붙여지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사진 제공_넷플릭스

2021-05-24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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