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의 힘을 믿는 크리에이터 <오페라> 에릭 오 감독

2021-05-28|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피라미드의 24칸에는 계층, 문화, 인종, 전쟁, 종교, 이념, 산업발전 등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자취가 빼곡히 담겨있다. 동그란 머리와 삼각형 몸통을 한 수많은 사람이 피라미드의 구획 안에서 맡은 바 일을 반복한다. 검은색과 흰색이 좌우 그 색을 바꾸며 끊임없이 돌아가는 피라미드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의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이야기한다. 한편의 오페라 같은 방대한 서사를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는 올해 아카데미시상식 애니메이션 단편 부문 후보에 오르며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오페라>는 에릭 오 감독이 4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품. 픽사 애니메이터로 <도리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에 참여했고, 동시에 <웨이 홈>, <군터>, <댐 키퍼> 등 독립 작품 활동을 이어온 오 감독은 자신의 색깔 중 하나로 ‘귀여움’을 꼽는다. “그 앞에서는 모두 무장해제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다”며 귀여움의 힘을 믿는다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오페라



<오페라> 제목의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 면도 있다. 또 포스터를 보면 오페라 표기가 독특하다. 좌우 대칭에 영문 순서를 바꾸어 표기했는데 분명히 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웃음)
사실 지금 질문한, 그 자체도 의도였다. (웃음) 처음 접하고 ‘이게 뭐지?’라는 반응을 바란 것도 있다. 오페라의 어원 자체가, 흔히 뮤지컬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산업이나 일, 노동(Labor)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작품이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어원이 가진 의미 그대로다. <오페라>의 세계관 안에서 수많은 군중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소통을 하고 또 하나의 균형을 이루면서 이야기적인 흐름을 이어간다. 한편의 뮤지컬 오페라 같은 서사시이지만, 오페라 극장이 아닌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연출 방식도 그렇고 작품이 지닌 스케일도 있어서 ‘오페라’ 타이틀로 갔다.

타이틀 디자인은 두 가지 의도를 담고 있다. 비주얼적으로 동그라미가 있고, 그 아래 대칭되어 두 다리처럼 있는데 그 모습이 극 중 캐릭터와 사실은 닮아 있다. 또 O가 글자면서도 형태 자체, 즉 이미지로 보이길 바랐다. 글자 순서를 바꾼 것은 그렇게 순서를 뒤죽박죽 함으로써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한 것이다.

<오페라>는 24개의 구획에 인간이 지속해 온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다. 아마도 다루고 싶은 주제와 소재를 정리하다 보니 24개로 구획된 거겠지? (웃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신 같기도 한) 존재와 맨 하단의 가운데 위치한 열쇠가 상징하는 바였다. <오페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고, 관객이 저마다의 해답을 찾겠지만, 연출자의 해석이 궁금하다.(웃음)
맞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추리다 보니 24개로 구획됐다. 최상단에 있는 존재를 ‘신’적이라고 했는데, (나는) 굳이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 전체 혹은 자연의 섭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일하게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 혹은 신의 형상을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한 그가 밤과 낮을 컨트롤한다. 그 친구는 낮과 밤을 움직여 시간의 흐름을 이어갈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우주와 시간 등 우리의 삶을 가두고 있는 커다란 개념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

피라미드 맨 하단의 중앙에 위치한 열쇠는 어떤가.
봤을지 놓쳤을지 모르겠으나 그 친구의 바로 아래에 열쇠 구멍이 있다. 그리고 맨 하단에 열쇠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열쇠 구멍은 삼각형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열쇠는 맨 아래에 매달려 있어 열쇠와 열쇠구멍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관객이 어떻게 해석할지, 열어 놓은 상징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열쇠구멍은 질문, 열쇠는 답 즉 Question&Answer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 관한 질문이나 답들이 과연 정말 옳은, 맞는 답이냐고 한번 꼬집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교육받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지, 혹은 흔히 답이라고 알려진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 거다.

픽사의 <도리를 찾아서> 속 문어 ‘행크’를 작업해 ‘행크 아빠’라는 애칭을 받기도 했고, 이전의 독립 단편 작품을 봐도 물고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번 <오페라>에서도 고래를 연상시키는 물고기가 등장하는데 ‘물고기’라는 생명체에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는 건가.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물고기를 정말 많이 사용하긴 했다.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얼핏 생각해 보면 내게 물고기는 생명체로 이입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면을 지닌 존재다. 예를 들면, 소나 개(강아지)는 그에 이입하고 소통하는 생명 그 자체다. 한데 물고기는 생명이되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개그 소재로도 많이 활용하는 등 웃음을 주기도 한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이 있다.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을 하는 입장에서 물고기의 움직임, 유영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작품에서 다뤘던 것 같다.


고래가 의미하는 바를 짚는다면.
<오페라>에서 나오는 물고기, 즉 고래는 대자연을 의미한다. <오페라>의 세계관 속에서 낮 동안은 사람들이 고래를 마치 개미처럼 다 갉아먹는다. 이를 통해 인간이 배를 불리고 살아가지만, 한편으론 자연이 파괴된다고 볼 수 있다. 밤이 오면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진다. 상층부에서는 환락 파티를 벌이는 등 인간의 추악한 면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 이르는데 이때 고래가 다시 나타나 마치 벌하듯이 인간을 다 잡아먹어 버린다. 그러다 다시 새벽이 오면 고래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이 죽은 고래를 인간이 또 갉아먹기 시작하는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낮에는 인간이 고래를, 밤에는 고래가 인간을 먹는다. 자연과 인간은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관계인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했다.

<오페라>는 여러 번 감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고, 동의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시 한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웃음) 관객이 특히 주목하면 좋을 포인트를 짚는다면.
너무 많다. (웃음) 다른 매체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 또 얘기하겠다. 요즘 미국 사회는 인종문제가 너무 심각하므로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아이들이 줄을 서 있는데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이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하얗게 칠해버린다. 그렇게 하얀 얼굴이 된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사회구성원이 되는 과정 자체가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억제하는 브레인머신을 만드는 거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종과 어떤 피부색에 대한 억압일 수 있다. 유색인종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피라미드 아래층에서 똑같이 벌어진다. 수용소가 있고, 그 안의 수감자들이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문받고 학대당한다. 얼굴색 그 자체일 수도 있고, 나아가 다양한 생각과 창의적인 사고에 대한 억압 등으로 중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을 꼭 짚는 이유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 사회는 인종문제가 가장 심각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피라미드 양쪽으로 흐르는 종이를 주목하면 좋겠다.

해당 장면의 의미는.
위쪽에 보면 역사학자가 있다. 한 명이 열심히 글을 쓰고, 그 종이가 양쪽 피라미드로 넘쳐흐른다. 종이가 굉장히 긴데 철학자, 역사학자, 교육자, 팩토리, 과학자 등 모두가 그 글을 읽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해석일 뿐인 지식(정보)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과연 역사가 정말 발생한 현실을 반영하는 걸까. 혹시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 즉 승자의 기록은 아닐까 하는 지점을 꼬집은 것이다.

하나 더 짚자면,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종교에 대해 비판 아닌 비판을 한 지점도 있다. 신실한 믿음을 지닌 분들은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오페라> 세계관 안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고 그곳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조각상이 두 개 있다. 사람들은 낮에는 신전의 신상에 숭배하지만, 밤에는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 아래 전쟁을 벌인다. 가톨릭-이슬람 간의 전쟁 등 역사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이 얼마나 잦았나.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님이 과연 전쟁을 원할까. 종교란 인간이 만든 제도적인 개념인데 그 때문에 인간이 서로를 죽고 죽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음악이 극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다. 음악 콘셉트와 음악 감독에 관해 소개를 부탁한다.
음악 감독 ‘앤드류’는 오랜 지기로 내 전담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음악 파트너랄까.(웃음) 픽사에서 같이 일했던 사운드 디자이너 아티스트다. 픽사 시절에 만나 이후의 내 작품에 거의 다 참여했다. 음악적으로 크게 두 가지를 고려했다. 하나는 <오페라>는 워낙 다양한 이야기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묶어주는 큰 흐름은 결국 음악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지닌 어떤 서사구조를 음악으로 어떻게 잡아줄지 고민하면서 연출했다. 또 하나는 문화적으로 초월적인 음악이기를 바랐다. 동양적인 색채와 북유럽의 음악 사운드, 모던함, 필립 글래스 등과 같은 현대 미니멀리스트 뮤지션, 비발디와 베토벤의 정통 클래식 등 모든 것을 아우르고 싶었던 것 같다. 굉장히 야심 찼었다! 왜냐하면 작품 자체가 동양권이나 그리스권 등 특정 문화권만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특정 시대상을 그리는 것도 아닌, 범지구적으로 다루기 있기 때문이다. 음악도 이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문화적으로 초월한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 <오페라>+



픽사 애니메이터로 <도리를 찾아서>(2016), <인사이드 아웃>(2015), <몬스터 대학교>(2013)의 작업에 참여했다. 픽사를 퇴사한 계기와 그 후의 작업 활동에 대해 들려준다면.
입사할 때부터 픽사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입사 전부터 비록 학생이었지만, 계속 내 이야기와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고 또 만들어 왔었다. 그 와중에 픽사에 입사한 거라 무언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라는 확신이 온다면 과감하게 움직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기회가 픽사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온다면 말이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픽사에서 보스(상관)가 나중에 말하길, 내가 입사한 지 몇 달 안 된 신입임에도 이미 회사 생활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하더라. (웃음)

픽사에서 만 7년 정도 근무할 즈음 ‘훌루’(hulu)에서 확실한 감독 제안이 왔다. 내 단편 <댐 키퍼>를 5분짜리 10부작으로 만드는 좀 특별한 포맷이었다. 글, 그림, 연출 등 오롯이 내가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편 <댐 키퍼>의 TV 시리즈 버전인 < 피그: 더 댐키퍼 포엠>(Pig : The Dam Keeper Poem)인가 보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수상한 거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의 주요 관심사는 <미나리>와 <오페라>였다. <오페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한국 제작이라는 점에서 좀 더 각별하다. 제작사는 어디인가.
맞다, 감사하게도 안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크리스탈’을 수상했다.(기자 주: TV프로덕션 부문 최고상으로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오페라>의 제작사는 ‘바나’(BANA)로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어 한국 제작사로 분류된다. 내가 미국 국적이라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외부에 소개되지만, 오리진이나 사상은 한국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작 관련해 기간, 비용 등에 대해 좀 더 들려준다면.
제작 기간은 4년 정도이고, 제작비용은 어떻게 가늠하기가 힘들다. 4년이라는 제작 기간 처음 2년은 제작사 없이 독립으로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주말이나 저녁에 모여 작업했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픽사 아티스트들이 많았기에 천문학적인 넘버가 나올 거다. (웃음) 감사하게도 지인들과 친구들이 믿어줘서 으쌰으쌰 하다가 후반부에 ‘바나’(BANA)가 붙어서 이후 작업을 서포트해줬고, 캠페인과 배급 등 관련한 모든 것을 총괄했다.

예전의 인터뷰에서 개인에서 사회로 관심이 향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오페라>의 시작 계기는.
정확하다. 그런 생각이 반영된 것이 오페라다. 개인에서 사회로 시선이 옮겨가는 건 어떻게 보면 사람이 성장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어릴 때 혹은 특정 나이까지는 자기를 알아가는 데 집중하는 시기가 필요하고, 어느 순간 보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회 속의 내가 보이고,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거대한 흐름이 읽히고 그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내 시선과 가치관이 차근차근 밖으로 향하고 개인-사회를 균형적으로 보게 되는 와중에도 삶에 관한 고민은 늘 했던 것 같다. 다소 현학적이지만, (웃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등 말이다.

이런 질문을 늘 안고 있던 중, 2017년은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상황이 크게 변한 때였다.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는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때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첫해였거든. 개인적인 견해를 떠나 당시의 갈등이 심화된 미국사회, 그리고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이 두 가지가 트리거, 즉 불씨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힘 빠지고 기운도 없고 슬프고 화도 나는 등 수많은 감정이 플러스 되면서 이 역사적 현장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나 시스템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인종, 종교, 역사, 자연재해 등 여러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오페라>를 만들게 됐다.

4년에 걸쳐 작업하면서 생각에 어떤 변화가 오는 시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그간의 경험상 작품마다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고 임하는 자세도 모두 다르다. <오페라>의 경우는 초기 단계에서 완벽하게 그림을 그려 놓으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었다. 중간에 변하거나 바뀌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이를 위해 공부를 좀 많이 했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당시의 상황만 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인 돋보기를 갖다 대도 연결되는, 유니버스 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 후 (비로소) 시작했었다. 그렇기에 중간에 생각이 변하기보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이렇게 말이지. 왜냐하면, 이후 안타깝게도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다. 코로나가 터지고, BLM(Black Lives Matter) 등 점점 더 혼돈된 상황이 밀려오니… 현실은 내 작품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평소에 ‘우리 인간이 정말 나아지고 있는가, 기술 혁신에 따라 많은 것이 발전하고 진화한다고 하는데 과연 맞는 걸까’라고 자문하곤 했고, <오페라>에 그 물음을 담으려 했는데 작품 시작 이후 흘러가는 상황이 이를 더 확실하게 했기에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미디어아트나 전시 형태로 기획했다가 애니메이션으로 컨셉트를 변경했다고 들었다.
아, 그 부분은 와전된 지점이 있다. 컨셉트를 변경했다기보다 미디어아트와 애니메이션 두 방식을 모두 고려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오페라>가 (봤겠지만)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를 담으려 한 작품이라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영상 기법으로는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폭을 넓혀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새롭게 가져갈지 그 방식을 고민했었다. 그 결과 처음과 끝이 뚜렷하게 있는 기승전결의 이야기로 할 것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완벽하게 이어지는, 무한루프 형식으로 가면 좋겠더라. 사실 사건과 사건이 맞물리며 이어지는 것이 역사 아닌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탄생이 있는 순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를 영화관에서 한 번 틀고 말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사람들이 두 번, 열 번 그 이상을 계속 볼 수 있는 전시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굳이) 장르화하니 미디어아트였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미디어아트를 고려한 것은 아니다. 또 단편 영화 버전도 동시에 기획했었다.

디즈니, 픽사, 블리자드 등에서 특별 상영회를 진행한 거로 알고 있다. 반응은 어땠는지. 스튜디오에 따라 <오페라>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오페라>의 정지된 화면을 보면 언뜻 게임의 인터페이스 같은 인상도 든다.
그래픽하면서 게임의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때때로 들은 적이 있다. 디즈니, 픽사, 블리자드의 반응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세 곳은 매우 세계적인 회사로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들이다. 그렇다 보니 내부에서 일하는 아티스트들의 본질은 사실 비슷하다. 게임으로 스토리텔링하느냐 영화로 스토리텔링하느냐의 차이지, 어떤 이야기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닮았다. 블리자드는 절대 게임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삶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오페라> 속 피라미드 24구획의 콘티라고 할지, 직접 그린 그림 등 메이킹 영상을 공개하면 흥미롭겠다.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오페라>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건가.
픽사나 블리자드, 혹은 영화제 등에서 초청받으면 제작과정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온라인으로 전체 공개를 하지는 않았지만, 초청돼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경우에는 그 과정을 다 보여준다. 아직 한국에서는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한국 전시에서 유사한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 전시 일정은 잡혔나.
진행 중이다. 이번 오스카 후보 지명 덕분에 감사하게도 좀 더 주목받게 되면서 좋은 제안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 더 멋있게 보여주려고 준비 중이다. 일단 올해 안에 전시를 여는 게 목표다. (웃음)


# <나무>(NAMOO), VR 기술 도전



향후 작품 계획은.
사실 1년 전에 <오페라>를 완성한 후 바로 새 작품 <나무>(NAMOO) 작업에 들어갔었고, 어느새 완성했다. (웃음) <나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영감을 받은, 완전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며,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키워드로 한 사람의 삶을 탄생에서 죽는 순간까지 훑는 시적이고 추상적인 판타지다. 나무가 인간을 대변해, 그 새싹에서부터 거대한 나무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관객이 경험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형식적으로 특이점은 VR로 만들었다는 거다. 가상현실이라는 매체를 가져와 훨씬 경험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13분 정도 분량의 VR 컨텐츠로 개발했고, 이제 곧 홍보를 시작할 것 같다.

VR 컨텐츠 개발과 관련해 제작사 등에 대해 좀 더 들려준다면. 또 공개나 상영은 어떤 형식으로 하게 되는지.
<나무>도 두 버전으로 만들었다. VR 콘텐츠로 또 단편 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다. VR 콘텐츠는 오큘러스 퀘스트2 패키지로 상업적으로 풀릴 예정이고, 단편영화는 영화제를 통해 공개하려고 한다. 오큘러스의 지원과 VR 스튜디오 바오밥, 그리고 나까지 셋이 한 팀이 되어 만들었다. 기술적으로 매우 많은 도전을 한 작품이라 VR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오스카 레이스도 끝났으니 이제 슬슬 홍보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푸시하기도. (웃음)


# 에릭 오



<웨이 홈>(2008)의 오리 혹은 강아지 닮은 쇠똥구리, <군터>(2014)의 통통하지만 날렵하게 스텝 밟는 소시지 ‘군터’ 같은 귀여운 친구들과 특유의 유머코드가 정말 매력적이다. 이런 귀여운 친구들을 또 만나고 싶다.
<웨이 홈>(2008)은 곤충이 주인공이지만, 좀 귀엽게 표현하고 싶었고 당시에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셨다. 귀여운 캐릭터도 내 생각과 색채 중의 하나이고, 굳이 얘기하자면 <오페라>에도 그런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귀여움과 개그 혹은 코미디의 힘을 믿는 편이다. 사람들은 귀여움 앞에서는 모든 게 무너진다, (웃음) 그 앞에서는 모두 무장해제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다. 앞서 언급한 <댐 키퍼>도 귀엽고 서정적인 면을 지녔고, 계속 그런 작품을 만들어 갈 것 같다.

비단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단편 영화는 일반 관객에게 문턱이 높다고 할지, 굳이 찾아서 보지 않으면 접할 기회가 드물다. 당신의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어떤 계획은 없는지.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대중에게 가까이 가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는 것보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감독이고 작가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대중적인 기호와 타협해 자신을 희미하게 하기보다는 내 색깔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페라>를 기점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실험과 대중성을 공존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 대중이 낯설어 할 수 있는 실험도 계속하겠지만, 훨씬 친근한, 예를 들면 넷플릭스를 틀면 나올 수 있을 법한 시리즈 물이나 장편 애니메이션 그리고 좀 더 대중 친화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티스트, 감독, 작가 등 당신을 수식하는 단어가 여럿이다.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이란.
애니메이션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어떤 나를 표현하고 생각을 기록하는데 가장 익숙한 데다 과정 자체도 즐겁고 결과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유도가 높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영화적으로도 풀 수도 있고, 아주 실험적인 영상으로도 풀 수 있는데 이를 모두 애니메이션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거든. 그렇기 때문에 영화감독 혹은 미술가 혹은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하게 작업하는 사람으로 계속 노력해 나갈 것 같다.

당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데 애니메이션이 탁월한 매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점이 특히 그런가.
애니메이션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실사영화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실사영화는 사람이나 존재해 있는 사물을 찍는 것 아닌가. 애니메이션은 백지 캔버스에 하나하나 그려가며 혹은 컴퓨터로 구현해 나가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도가 그만큼 크다는 생각이다.

요즘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화두가 궁금하다.
요즘 사실 생각이 좀 많다. 그러려고 해서가 아니고 자꾸 사회적인 쪽으로 마음이 간다. 아예 인종문제에 집중하거나 한편으로는 훨씬 개인적인 문제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정이삭 감독님이 본인의 경험을 <미나리>로 구성했듯이 나라는 사람의 경험담이나 작지만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깊고 섬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게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올 것 같거든. 미국사회에 속해 살면서 현재 느끼는 갈등과 여러 감정들, 또 내 나이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여담인데, 얼마 전 아버님인 오준호 박사가 CTO로 있는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번 오스카 후보 지명 후 뭐라고 하시던가. (웃음)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가 하는 일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 주셨고, 이번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 정말 너무 기뻐하셨다. 시상 결과도 떨려서 못 보셨다고 하더라.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늘 하는 말인데 아버지는 과학자이고, 아들은 예술가라 얼핏 보면 정말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과학과 예술은 동전의 앞뒤라고 생각한다. 두 영역 모두 진리를 탐구하고, 어떤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버지가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은 그렇게 창의적일 수 없다. 결단력, 결정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보면서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음, 요즘 ‘일상’이라는 게 참 없었다. <오페라>의 오스카 캠페인으로 일상이 아닌 일상을 최근까지 보냈고, 또 코로나로 인해 미국사회는 완전히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년 동안 극단적인 락다운 상황에 있다가 백신이 보급되면서, 상점들이 문을 여는 등 일상으로 조금은 돌아가는 모습이다. 어제 근 1년만에 친구와 만나 야외에서 브런치를 먹는데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좋더라. 그동안 겁이 나서 외부활동을 자제했는데, 며칠 전 백신 접종을 완료해 오랜만에 나가 햇살을 맞으며 식사를 하니, 정말 일상의 소중함이 체감되더라.


사진제공. BANA

2021-05-28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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