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볼루션! 멈추고, 돌아보고, 나아가라. 이명세 서울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

2021-06-01|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전 세계 다양한 환경 영화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서울환경영화제가 오는 6월 3일 열여덟 번째 문을 연다. 환경과 변화와 혁명을 의미하는 ‘에코볼루션’(ECOvolutio)을 슬로건으로 영화제는 사상 초유의 팬데믹 현상을 맞닥뜨린 현재를 돌아보고, 환경의 커다란 전환을 촉구하는 영화를 상영한다. 환경 지킴이로 나선 소녀 ‘툰베리’를 조명한 <그레타 툰베리>,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른 에릭 오 감독의 <오페라> 등을 비롯해 25개국 64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개그맨>으로 데뷔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스타일리스트’로 등극한 이명세 감독은 올해로 4회째 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섹션 명칭에서 ‘경쟁’이라는 수식어를 모두 뗐다. 경쟁은 발전의 동력이지만, 그만큼 환경의 파괴를 초래한 것도 사실인지라 영화제 내에서 만이라도 ‘경쟁’을 지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작지만, 변화를 이끌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평가하는 이 위원장을 만났다.


#서울환경영화제



어느덧 4회째 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여타의 영화제와 달리 서울환경영화제는 독립된 조직을 갖춘 것이 아니라 환경재단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영화제다. 환경을 테마로 아시아에서는 최고 규모이고 세계 3대 환경영화제 중 하나인데 그 규모와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지명도가 낮은 편이다. 평소에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최열 조직위원장님과 (당시 영화제를 담당하던) 맹수진 프로그래머의 제안으로 합류하게 됐다. ‘환경’이라는 인류와는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영화제이니만큼 좀 더 대중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2018년에 합류했다.

MBC와 공동 개최한다. 지상파 방송국과의 협업인데,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작년에는 손석희 전 사장이 먼저 연락을 줘 JTBC와 함께했었다. 이번에는 MBC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노 모어 플라스틱’(No More Plastic) 캠페인을 개최하여 성수동 일대에서 패션 업사이클 전시, 마켓, 체험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업을 시도했다. 또 MBC TV 채널을 통해 몇몇 작품을 방영해 관객에서 한층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개최하는 두 번째 영화제다. 어떤 레퍼런스도 없는 상황에서 개최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접근했을 것 같다. 올해의 변화된 점이 있다면.
지난해부터 다른 영화제와 한층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안전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서로 알려주는 등 말이지. 사실 코로나 국면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웃음) 상황에 적응하며 알차게 꾸리려 노력했다.

올해의 변화점은 영화제에서 ‘경쟁’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뗀 것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하기 위해 경쟁하고 그 결과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상과 혜택은 동일하지만, 국제경쟁부문은 국제환경영화부문으로, 한국경쟁부문은 한국환경영화부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에코볼루션’(ECOvolutio) 이다. 의미를 짚는다면.
코로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전 세계가 멈추니, 예를 들면 중국의 공장 등이 가동되지 않은 결과 미세먼지나 대기오염 등에서 환경은 더 깨끗해지지 않았나. 그런 현상을 접하며, 올해 영화제는 지금 이 멈춘 상황을 돌아보자는 취지를 담아 ‘에코-레트로’를 슬로건으로 준비했었다. 하다 보니 단지 돌아보고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를 향한 어떤 점핑(변화와 혁신)이 필요하겠더라. 다시 말해 현 상황을 인식하고 아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거지. 제로 웨이스트, 대중교통, 장바구니, 자전거, 텀블러 사용 등 생활 속 실천으로 나가자는 거다.

또 코로나는 자연의 역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공격이 목적이 아닌 인류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애정을 가지면 더 많이 보이듯이 나 역시 영화제에 합류 후 많은 것을 더 알게 됐다. 많은 분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조직위원장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올해 영화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탄소제로’를 꼽았다.
제로는 힘들겠지만, (웃음) 그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코로나로 멈춰진 세상에서 지구의 온도가 0.5도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탄소 절감은 중요한 과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의 격변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몇몇 선진국이나 일부 기업이 달라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환경학자들이 예측하길, 2050년대 즈음에는 지구에 (기후 변화로 인한) 격변이 일어난다고 한다. 한국만 해도 요 몇 년 사이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지 않나. 2030년 정도 되면 서울의 날씨가 제주도와 유사해질 것이라고 하는데… 기후의 변화를 아직은 크게 실감하지 못할 수 있으나, 이미 변화는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대비하자는 거지.

철학자, 과학자 등 여섯 명의 시선을 담은 다큐멘터리인 개막작 <우리는 누구인가>(마크 바우더 연출)를 비롯해 25개국 64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기후 변화, 도시와 공간, 문명비판, 식량 문제, 가족을 위한 모험 등을 테마로 섹션을 구성했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나 기획을 꼽는다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이다. 인간과 환경을 면밀하게 탐구한 그를 최초의 환경영화 거장으로 재조명한다. <확대>, <일식>, <정복된 사람들> 등 10여 편을 상영한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면 어떤 충격을 받을 수도, (웃음) 가능하면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영화 외에 주목할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영화제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중점적으로 강화한 섹션이 토크 프로그램이다. 영화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고, 영화를 보고 감독이나 관련 주제의 전문가와 함께 좀 더 심화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앞서 개최한 전주국제영화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비롯해 올해는 영화제들이 오프라인 개최를 중심으로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국내외 게스트를 최소화한 상황에서 영화인 간의 교류, 영화인과 관객과의 소통의 기회나 현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 영화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코로나로 인해 영화제는 온라인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지난해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영화제도 창작자도 뭔가 싶은 심정이었다. 올해는 적극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혔다. 개막식을 생중계하고 또 온라인 콘서트처럼 비대면이라도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많이 열어 놨다. 다른 영화제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버 폭주 등으로 인해 관람에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또 온라인 상영의 경우, 예매를 하면 24시간 동안 관람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해, (시간적인) 접근성을 높였다.

영화제의 인력 구성과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서도은 프로그래머를 주축으로 영화제 준비 기간은 13명 정도가 비상근으로 근무한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여타 영화제와 달리 예산은 대부분 재단 모금으로 충당하는 거로 알고 있다.


# 이명세



지난 4년간 영화제를 맡으면서 생각과 행동 등 개인적인 변화도 컸을 것 같은데, 어떤가.
몰랐던 여러 사실을 접하며 덕분에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흥미로운 환경 영화를 많이 봤는데 특히 <게임 체인저>가 기억에 남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채식을 강조하는 비건 다큐멘터리로 채식을 하고 있는 운동선수와 사회적 리더 등 유명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본 후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육식보다는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완전한 채식으로 바꾼 주변인도 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거지. 중요한 건 이제까지는 무심코 지나갔던 부분에 시선이 가고, 그것을 주변과 나누게 됐다는 거다.

환경이나 기후의 변화 등 관련 이슈를 영화로 이어갈 의향은 없는지.
요즘에는 좀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객관적인 사람이라. (웃음) 워낙 큰 예산이 필요한 장르이다 보니 스스로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나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감독은 대체로 그렇다. 환경 변화나 이상 기후를 다룬 (할리우드급) 블록버스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으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지.

요즘, 관심 가는 이슈가 있다면.
음, 교육개혁? 환경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가는 거라 사람이 변해야 하고 또 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조직이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교육은 경쟁을 너무 심화하는 방향이다. 이런 경쟁 위주의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자라서 과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지, 협소한 시야로 세상과 접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영화업이 전방위적인 타격을 받았고, 그중 극장은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하다. 코로나 이후 영화, 특히 극장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코로나를 계기로 대중은 이미 OTT 플랫폼의 편리성을 접했지 않았나.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이자, 문화 공간이다. 음식, 문화, 영화, 공연 등이 어우러진 복합 컬처 공간이니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이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극장을 찾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매체의 소비 방식이 변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 마케팅 방식도 변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OTT 플랫폼을 이용하겠지만, 그들은 그들 대로, 극장 애용자는 또 애용자 대로 소비하리라 본다. 이런 방식은 점차 연극, 뮤지컬 등으로 영역을 더 확장해 나갈 것 같다. 여담인데, OTT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소위 ‘어둠의 경로’는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웃음)

작품 계획은 없는지. 궁금해할 팬이 많다.
몇 편을 생각하고 있고 준비 중인데 문제는 투자다. (웃음) 요즘은 투자 환경이 많이 바뀐 게 이제는 작품보다 캐스팅, 즉 배우가 우선이더라. 투자자 입장에서야 스타 캐스팅이 안정적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감독이 좌절하게 된다. 시스템적으로는 오히려 상당히 후퇴했다고 본다. 또 배우가 작품에 관심있다고 해도 투자가 안돼 엎어지는 경우도 있고 난관이 곳곳이다.

뜬금없지만, 당신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또 영화감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
영화는 정체성으로 내겐 종교 같은 거다. 이명세, 즉 영화라고 할지.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형사나 신부가 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 관심이 많거든. 생각해 보니 추리와 질문은 좋아하지만, 형사는 겁이 많아 못했을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아침에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날 때 기분 좋다. 그렇게 제때 일어나 제때 집을 나오는 순간 행복하다. 마침 오늘이 그랬다.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사진. 박광희(Ultra Stdudio)

2021-06-01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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