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공포가 아닌 슬픔 <여고괴담> 이미영 감독

2021-06-28|이금용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오랜 기간 충무로를 지켜온 이미영 프로듀서가 감독이 되어 관객을 찾았다. 지난달 타계한 故 이춘연 대표의 영화사 씨네2000에서 제작한 <여고괴담> 시리즈의 1편과 4편에 참여하며 <여고괴담>과의 인연을 시작한 그는 첫 연출작으로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을 들고나왔다. 이미영 감독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여고괴담>의 핵심은 공포가 아닌 슬픔이다”라는 이춘연 대표의 조언에 따라 “영화를 통해서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들 대신 복수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해당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밀은 없다>(2015) 이후 오랜만이다. 이번엔 제작이 아닌 연출에 처음 도전했는데.
제작을 맡았던 <비밀은 없다>의 개봉을 기다리면서 차기작을 구상했다.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출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게다가 요즘엔 연출자가 제작사에 소속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제작사의 기획과 잘 조화되는 새로운 연출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직접 연출하게 된 거다. 하지만 당시에 쓰던 작품은 너무 예산이 크고 내용도 방대한 작품이어서 주변에서는 다른 영화로 연출을 시작해보기를 권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이춘연 대표님과 식사를 하다 <여고괴담> 이야기가 나왔고, 이 대표님이 나더러 6편을 연출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때부터 스토리를 짜기 시작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포영화 프랜차이즈로 손꼽힌다. 그런 시리즈의 신작을 데뷔작으로 선택하면서 새로운 공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제작사가 공포 그 자체보다 다른 데 더 비중을 두기 때문에 그런 부담에서는 자유로웠다. 이춘연 대표께서는 <여고괴담>의 핵심이 공포가 아니라 슬픔이라고 했다. <여고괴담>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나이를 지나온 어른들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더라. 여학생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위로와 연민, 따뜻함, 공감이 있어야만 한다고 계속 강조하셨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선 누구를 위로하고자 했나.
1986년 대학에 들어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고 느낀 충격과 상처는 그 이후 나의 사고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젠간 영화를 통해 꼭 한 번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그 시기 광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느 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5·18 계엄군에 성폭행 당한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보게 됐는데 그 순간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은희’라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당시 너무 끔찍한 일을 겪어 그 트라우마로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수십 년이 지나 교감의 위치로 모교로 돌아와 그 기억을 되찾아가는 인물이다.

‘은희’의 이야기가 당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면 ‘하영’을 통해서는 고등학교라는 시리즈의 큰 틀을 스토리에 녹여내려 했다. ‘하영’의 서사 역시 실제로 학교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을 토대로 구축했다. 영화에선 교사를 성폭행 가해자로 설정했지만 현실에선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같은 학생일 수도 있고, 주변 이웃이나 행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 폭력 그 자체보다 여성들이 더 두려워하는 건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더라. 영화를 통해서 그런 공포를 겪어야만 했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들 대신 복수해주고 싶었다.


영화는 ‘하영’보다는 ‘은희’의 서사에 무게를 둔다. 모교로 돌아간 ‘은희’가 억지로 지웠던 기억을 점차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섬뜩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은희’의 서사를 연출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자세히 풀어 설명했더니 느슨하다는 반응이 있었고 또 짧게 편집했더니 급하고 친절하지 못하다는 평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친절한 것보단 짤막하고 미스터리한 게 낫다고 결론을 짓고 편집도 그런 방향으로 했다. ‘은희’의 반전도 명확하게 반전 포인트를 삽입하기보다는, 대사로 툭 치고 넘기는 식으로 의심할 만한 단서가 지나간 다음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의도적인 연출이지만 분명 일부는 무섭다기보다 그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김서형 배우가 나의 그런 부족한 연출력을 잘 메꿔줘서 대단히 감사하다. (웃음) 우리 영화에 있어 정말 기적 같은 존재다.

말 그대로 김서형의 존재감이 어마무시하더라.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은희’ 역의 배우를 캐스팅할 때 물리적인 나이에 맞춰 캐스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80년대에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면,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할 나이라고 하더라. (웃음) 그래서 나이가 아닌 이미지에 맞춰 김서형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다. 솔직히 이번 작품 전엔 잘 몰랐다. 그런데 서형씨를 보자마자 너무 ‘은희’스럽더라. 눈빛이나 표정, 목소리 톤까지 너무 좋았다. 촬영하면서도 의지를 많이 했다. 서형씨가 없었으면 이걸 끝까지 붙들고 완성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시리즈 전작들과는 다르게 학생보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인지.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어린 연령대의 관객보다는 어른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교장 선생님, 수위 아저씨와 학교 앞에서 떡볶이 가게를 했던 할머니까지 세 명의 성인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꽤 공을 들였다.

이유는?
한 여학생이 겪은 처참한 사건에 이들이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연결됐고 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처럼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2차 가해를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수위 아저씨처럼 피해자를 지키려고 나섰다가 화를 당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또 ‘할머니’처럼 피해자를 위해 나서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는 인물도 있다. 관객들이 세 사람을 보며 자신이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생각했으면 했다.

꼭 <여고괴담>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않나.
사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웃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고괴담>이 아니었다면 제작이 힘들었을 거라 농담을 섞어 답하기도 했다. 제작자가 아닌 작가이자 연출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상업적인 측면은 제작사가 커버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영화가 다루려는 사안들이 왜 이야기돼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절실하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나 제작자들은 여기에 대한 논란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선 각자가 <여고괴담>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은 당황스러워하고, 또 의아해하거나 신선하게 느끼는 등 다 다르게 받아들이더라.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도 있었다.

연출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간 어깨너머로만 연출 과정을 배웠지 직접 배우거나 한 적이 없어서 연출을 하는 데 어려움이 꽤 있었다. 카메라 위치나 배우 동선을 고려하면서 콘티를 짜는 것도 처음이었고, 또 막상 현장에서 작업할 땐 콘티 작업과 많은 차이가 있어서 수정도 많이 했다. 현실적인 이유로 CG를 포기하기도 했고.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차기작 계획은?
<비밀의 없다> 개봉을 기다리면서 썼던 시나리오가 있다. 조선 후기,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대한작품이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국가가 등장하고, 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의 이야기다. 시나리오는 다 나와있고 서둘러서 촬영에 들어가고 싶은데 나와 다른 감독이 공동연출을 하게 될 것 같다. <여고괴담> 상영이 마무리되면 캐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사극이고 예산이 꽤 커서 빠르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웃음)

마지막으로,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얼마 전 가까운 사람을 잃는 힘든 일을 겪었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순노동을 무아지경으로 하는 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를 하나 시작하게 됐는데 일에 집중하다보면 아무 잡생각이 안 나더라. 더불어 성취감도 생기고. 영화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가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단순노동은 그런 게 없다. (웃음)

사진제공_영화사 머리꽃

2021-06-28 | 글 이금용 기자 (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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