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영화의 재정의’ 지금 아니면 늦다,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2021-07-08|박은영 기자 구독하기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국내 장르영화를 발굴과 지원하고 또 세계 유수의 장르영화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이하 BIFAN)가 오는 7월 8일 개막한다. 주류에서 비켜난 수상한 장르 영화의 재능들을 열렬히 지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이상해도 괜찮아(Stay Strange)’를 슬로건으로 코로나 19로 지난 2년여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영화인과 관객,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할 예정이다. 개막작 구피도 감독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나홍진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한 <랑종>(반종 피산다나쿤 연출), VR 스튜디오 바오밥 기획전 등 47개국 258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결혼이야기>, <은행나무 침대>, <엽기적인 그녀>까지 90년대 한국영화의 붐을 일으키며 이어지는 르네상스의 기틀을 잡았던 영화 제작사 ‘신씨네’의 신철 대표는 올해로 3회째 BIFAN을 이끌고 있다. ‘영화제 신인’을 자처하는 그는 그만큼 틀에 박히지 않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가능한 인물. 테크놀러지의 발달을 영화계의 시스템과 관념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영화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하는 신철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올해는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3년째 이끌고 있다. 그간의 흐름을 짚는다면.
사실 영화제가 돌아가는 방식이랄까, 그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몰랐다. 첫해는 얼떨결에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유례없는 상황을 맞아 정신없이 보냈다. 올해까지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점인지 구체적으로 전한다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게 된다. 한국에서 영화제가 어떤 일을 할지, 어떻게 재능있는 신진을 서포트하고 키워나갈 바탕을 만들지 지난 3년간 고민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영화제 간의 전체적인 커넥션과 인력구성, 또 세계 영화제의 토양과 토대를 파악하고 그 과실을 어떻게 교환할지 등 한 10년은 돼야 그 답이 보일 것도 같다. 영화제는 재원의 대부분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데 관료화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다는 생각이다.

올해의 특징을 짚는다면.
코로나 시국에서 두 번째 치르는 행사라 그런지 만나지 않고 만나는 방식에 좀 익숙해졌다. 지난해는 비대면을 아쉬워했다면 올해는 어떻게 만날지 발견하는 해라고 할까. 지난해는 경황 없는 상황에서 테스트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환상영화학교를 온라인으로 진행, 전 세계로 확장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얻었다. 한마디로 코로나 상황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어느덧 25회를 맞았다.
올해가 25회라 과거를 돌아보는 의미로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지연된 부분이 있다. BIFAN이 쌓아온 이제까지의 결과물을 향후 몇 년에 걸쳐 아카이빙화하는 등 정돈하고 정비하려고 한다. 지난해와 올해는 BIFAN의 변화와 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기간이자 실험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잘 구분이 안 되지 않는지. 영화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재, ‘영화의 재정의’ 지금 아니면 늦다



영화의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보면 영화를 여전히 ‘필름 또는 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에 담긴 저작물’로 규정하는데 ‘아직도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방송과 영화가 완전히 분리돼 성장해 왔는데, 이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특이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가령 <왕좌의 게임> 같은 작품은 영화인가 아닌가. 예전이야 카메라 등 제작도구와 유통· 배급 등에 있어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똑같다. 당연히 퀄리티도 마찬가지다.

이제 영화를 재정의해서 다음 시기의 변화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극장용 영화는 영화대로, 또 크리에이터가 창작 욕구를 펼칠 콘텐츠와 이를 태울 매체나 플랫폼은 또 그것대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스템적으로 법적, 예술적으로 재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한때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번성했다가 몰락한 일본 영화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가 한 편으로 마무리 되는 완결성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왕좌의 게임>은…또 말했듯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희미한 지금, 영화를 재정의함으로써 얻는 실익은 뭔가.
소설의 경우 단편 중편 장편으로 분류하지만, 모두 ‘소설’ 아닌가. 왜 영화라고 해서 두 시간이 넘어가거나 여러 편으로 나오면 드라마(시리즈)라고 바라보는지? 실익이라 하면, 현재 영화계의 인력이 모두 드라마 쪽으로 넘어가 일하고 있다. ‘극장용’(혹은 이에 준하는) 영화만 영화라고 한다면, 영화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다. 국내에서 영화 관련 모든 문제를 관장하는 곳이 영화진흥위원회다. 이외 게임, 웹툰, 웹소설 등 문화 관련 분야는 한국콘텐츠진흥위원회가 통합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영진위의 규모가 점점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며 르네상스를 꽃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봉준호 <기생충> 등 한국영화는 발전을 거듭했고 큰일을 해왔다. 그 탄생에는 그 당시에 형성된 유, 무형의 자산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TV) 드라마가 영화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방송국 PD도 영화로 진출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영화’라는 타이틀로 어떤 특권을 누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드라마는 이제 시리즈 영화라고 생각하고, 연재소설처럼 접근해야 한다. 여담인데, LP를 좀 듣는지?

소장한 LP만 많다. (웃음)
극장이 LP와 같은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 달에 한 번 LP 시청회에 참석한다. 음향회사가 주최하는 자리로 최상의 사운드 시설을 완비해 놓고 20~30명이 모여 음악을 감상한다. 보면 대부분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극장을 가는 것이 일상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극장에서 볼 영화와 극장에서 안 볼 영화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고, 극장이 아닌 모니터 혹은 집에서 OTT로 감상하는 것이 보편화 될 것이다. 양분되거나 6:4 혹은 4:6 정도로 분배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해 국내 영화제들이 온라인 상영을 놓고 견해가 갈린 와중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한 BIFAN의 수장다운 의견이다. (웃음) 오프상영과 온라인 플랫폼의 병행에 따라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또 향후 전망은 어떤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가 처음 론칭할 때만 해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달걀도 가짜로 만들어 팔 정도인데 누가 물건을 보지도 않고 주문하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거지. 그래서 성장이 매우 느렸는데 마침 사스가 터졌다. 외출하기 힘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시켜보니 기대 이상으로 편하고 믿을 만했던 거다. 이후 알리바바는 급성장할 수 있었다. 난 코로나가 영화산업에 알리바바의 사스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관객은 현장에서 혹은 온라인을 통해 예매했고, 이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한데 OTT 등을 이용해 보니 너무 편한 거지.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상영은 시간과 공간의 편리성을 담보하는데 이런 장점을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영화제 관련자들도 점차 고려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라인 상영을 무작정 확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영화제는 필름마켓을 선도하고 흐름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출품된 영화는 이후 배급과 개봉 등의 프로세스를 거치기에 적절한 관객수 조절이 필요하고, 불법복사(카피)와 유출방지도 큰 문제다. 하지만, 이는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적으로 어떤 식으로 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칸국제영화제가 80여 개 국에서 온라인 마켓을 연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비유하자면 영화제에 코스트코, 아마존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비욘드 리얼리티- 테크놀러지의 발전을 따라잡다, 괴담- 영화제의 색을 강화하다


개인적으로 VR/XR 섹션인 ‘비욘드 리얼리티’가 BIFAN의 개방성과 기술적 선도성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아닌가 한다. 이번에 VR 전문 바오밥스튜디오 기획전을 준비했다.
VR 업계를 대표하는 바오밥 스튜디오의 신작 세 편과 기존작 두 편, 총 다섯 편을 감상할 수 있다. 에릭 오 감독의 서정적인 <나무>부터 흥미로운 인터렉티브를 제공하는 <바바 야가> 등 그 내용도 다채롭다. 영진위가 영화제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이런 전시를 왜 영화제에서 하느냐’고 하길래 ‘왜 안 하느냐’고 반문했다. 미술관에서나 할 법한 전시라는 거지. 필름으로 찍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만 영화라는 소위 ‘영화주의자’의 관점인 거지. 테크놀러지의 발달을 못 따라가는 데다 영화의 범위를 확장하려면 뭔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 굳이 하려는 생각이 없는 거다. 집단의 관료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DJ 정권의 문화적 철학으로 한국영화가 급속히 발전했고, 당시 정비된 체제하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다시 말하지만,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다. 과거의 도그마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시야를 넓히면 게임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인터렉티브 영화가 많이 시도되고 있지 않나. 예술적 성취는 여전히 추구하면서 산업의 범위는 확장하고 넓혀줘야 풍족하게 영화계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BIFAN을 이끌면서 집중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괴담’ 프로젝트다. 부천이 유니스코 창의도시인데 혹 알고 있는지? 부천시와 영화제가 손잡고 지난해 출발했다. 올해는 질적, 양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괴담의 발굴과 수집, 단편 제작지원으로 시작한 괴담 아카이브 사업이 괴담 프로젝트 시즌1이라면 올해는 창작지원사업을 대폭 강화한 괴담 캠퍼스로 시즌2를 맞이한다.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넘치는 지원자가 많아 멘토 간에 멘티 쟁탈을 할 정도이기도. (웃음) 시즌1의 단편 제작지원작은 올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다. 괴담을 중심으로 한 영화와 콘텐츠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괴담 생태계를 발전시켜 나가, BIFAN의 시그니처로 자리할 예정이니 눈여겨봐 주길 바란다.


‘프린지’, 미디어/ 표현의 경계에서 실험하는 영화제



영화제에 있어 집행위원장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숲을 봐주는 역할이다. 영화제의 컨셉트와 비전을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 스탭들에게 ‘영화를 재정의하자’, ‘우리는 프린지(fringe)’라고 한다. 미디어의 경계, 표현의 경계에서 실험하는 영화제가 되고자 한다. 록큰롤에서 랩이 나왔듯이 경계에 있는 작품을 메인스트림으로 퍼 올리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한마디로 ‘덕후’ 혹은 ‘너드’가 주류로 진출할 교두보가 되겠다는 거다. 그러니까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잘난 척하기보다 좀 망가져도 진취적으로 나가려 한다. BTS, K-방역, <기생충>, 반도체 등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나. K-영화제의 독창성을 찾고자 한다.

BIFAN의 프로그램 구성이 잘 짜였다고 항상 느낀다.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25년을 거치며 구조를 만들고 정비돼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부천이 여타 영화제처럼 관광 인프라가 뛰어난 곳이 아니라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지금까지 훌륭히 해왔다. 프로그래머와 스탭, 그리고 관의 노력 덕분이 아닌가 한다. 부천은 BIFAN 외에도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문화 콘텐츠에 힘을 쏟고 있는데, 여기서 관이 굉장히 협조적이다. 자연 자원은 부족해도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전체 예산은 약 50억 원 규모로 절반가량이 시·도, 국가 등 공적 지원금이다. 특이하게 후원회가 있어 일부 지원하고, 나머지는 협찬, 티켓 판매 등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신씨네’, 재도약을 준비 중



1988년 ‘신씨네’ 설립 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를 시작으로 <결혼이야기>(1992)부터 <은행나무 침대>(1996), <편지>(1997), <엽기적인 그녀>(2001)까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히트작을 쏟아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뜸해졌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건가.
78년 김수용 감독님의 <도시로 간 처녀> 연출부로 시작해 내가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를 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당시 첫 번째 목표는 한국시장에서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이기는 거였는데, <결혼 이야기>가 아마도 여름 시즌 할리우드 영화를 최초로 앞질러 목표를 달성했다. 이후 강재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로 할리우드 영화를 또 이겼고,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로 평정했다고 할까. (웃음) 이후엔 글로벌라이즈, 다시 말해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다. 한 5년 정도 투자하면 글로벌 시장에 통할 영화를 만들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2002년 미국에 갔다. 우리가 아무리 제작비를 많이 들인다 해도 국내만을 시장으로 해서는 한계가 있고, 결국 세계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다면.
두 가지였다. 디즈니 같은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는 스튜디오 확보와 <아바타> 같은 작품적으로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소위 ‘대박’ 영화를 제작하는 거였다. 그런데 할리우드 시스템과 영화 산업에 대한 이해와 대응, 준비가 부족해서 엎어졌다. 당시의 경험을 이후 할리우드 비즈니스 시 참고하고 있다. 미국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은 ‘신씨네’가 승승장구했던 것이 나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는 거였다. 교만했던 거지. 교만에 빠지지 않았다면 미국에서도 성공했을지도, 어떻게든 뚫었을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교만이 나를 함정에 빠지게 했고, 그래서 시간이 걸렸고 고생했다. 크리에이터 집단이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 수 있는 프로덕션과 글로벌 작품은 여전히 목표다. 꼭 이루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하거나 즐거운 일이 있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요즘 조금씩 배우는 것 같다. 일상에서, 불교와 명상을 통해 많이 배운다. 명상 클래스는 오랫동안 다녔는데 겉으로만 알다가 요새는 배우는 재미를 느낀다. 예전 같으면 큰 고통으로 다가올 일들이 이젠 그렇지 않다. 행복한 거지? (웃음)


사진. 박광희 실장(울트라 스튜디오)


2021-07-08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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