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변화 수용하되 기본 임무 그대로,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

2021-10-06|박꽃 기자 구독하기

[부산= 무비스트 박꽃 기자]




코로나19 이후 변화 수용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지난해 오프라인 고집했지만 올해 단편 영화는 온라인 상영

<마이 네임> <지옥> <포비든> OTT 시리즈물 전용 섹션도 신설

“변화 받아들이면서 창작자와 관객의 접촉면 많이 만들어낼 것”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일본, 서남아시아 작품 8편 ‘사심 추천’

“위축된 창작자에게 힘 된 영화제로 기록됐으면”



지난 3월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새롭게 위촉됐다.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장기적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분명한 노선을 가지고 계셨다.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을 상영하는) ‘온스크린’ 섹션을 만든다거나, 부산 전 지역에서 영화제를 즐기는 ‘동네방네 비프’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된 이유다. 영화제가 꾸준히 지켜왔던 ‘아시아 영화의 허브’라는 기본 임무를 지니고 가면서도 관객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덕분에 진일보한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온스크린’ 섹션은 넷플릭스 시리즈물 <마이 네임> <지옥>과 HBO 시리즈물 <포비든> 등 3편을 부산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특별한 섹션이다. 앞으로 영화제에서 영화라는 포맷의 경계를 넘어 시리즈물까지도 꾸준히 상영할 계획인가.
섹션을 만들 때부터 앞으로 계속 유지하자는 전제를 두고 시작했다. 현재 창작 환경이 (영화만큼이나) 시리즈물에 관심이 크고,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작품은 영화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하다. OTT 업계가 (오리지널 시리즈물 제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이런 작품이 더 늘어날 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경계가 모호한 작품을 잘 받아들여서 극장에서 볼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세 편만 상영하지만 앞으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상당하다.

코로나19 이후 영화제와 OTT의 관계성이 부쩍 높아진 느낌이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올해 상영하는 223편의 영화 중에 3편이 시리즈물인데, 앞으로 그 비중이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의 1/4 수준에 해당하는) 5~60편까지 늘어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기다. 영화제는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플랫폼이다. 그에 대한 관객의 기대도 분명하다. 때문에 기존의 주축은 그대로 두면서 보조적으로 시리즈물을 활용해야 한다. 영화제는 현재 추세에 맞고 관객의 (새로운) 니즈에 맞는 작품을 극장 상영 형태로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영화제 자체를 OTT(에 의존하는 형식으)로 바꿔내는 데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여러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창작자와 관객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게 하고 그들의 접촉면을 늘리는 일을 해야 한다.

단편 영화 22편을 네이버 시리즈온과 유튜브로 상영한다는 결정도 새로운 변화다. 지난해 팬데믹 여파로 작품당 단 1회밖에 상영할 수 없던 때에도 온라인 상영이라는 옵션은 제외하지 않았나.
단편 영화를 온라인 상영하고 일정한 수익이 창작자에게 돌아가도록 할 수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그 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 영화와 단편 영화는 유통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편 영화는 극장 상영을 전제로 수익 구조를 창출하지만, 단편 영화는 특별한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섹션에 초청한 모든 단편 영화를 후보로 두고 온라인 상영에 동의한 작품을 목록에 올렸다. 거의 모든 작품이 온라인 상영에 동의했다.

좌석 수를 50%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극악했던 지난해보다는 영화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 마켓(E-IP마켓) 등 굵직한 유관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영화계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포럼 비프’도 중단됐다. 이런 아쉬움을 상쇄할 만한 요소가 준비돼 있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국내 영화제 중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게스트를 초청하게 됐다. 입국 절차에 평소 대비 다섯 배 정도의 노력이 들었다. 입국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해외 게스트 초청을 결정한 건, 영화제 존재 이유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독과 배우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다만 마켓의 경우는 (비즈니스)미팅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할지 오프라인으로 할지 불안정한 정보를 주기 시작하면 미팅 성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때문에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다행히 상영작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아네트> <푸른 호수> <언프레임드> <베네데타> 등 수많은 작품이 개막 전에 매진됐다. 잘 만든 영화에 대한 관객의 갈증이 뜨겁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추후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 리스트를 공식적으로 공개하겠지만,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이 영화는 꼭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사심 추천’ 작품이 있다면.
너무 많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때문에 다른 일본 영화들이 다 묻힌 감이 있는데(웃음) 올해 일본 작품 중에 좋은 게 많다. 스기타 교시 감독의 <하루하라상의 리코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감독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FID마르세유영화제에서 상을 여러 개 타면서 전 세계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만큼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한 <실종>은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굉장히 독특한 스릴르 영화다. 봉준호 감독 작품의 조감독 출신인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만들었는데 역시 주목할 만한 일본의 차세대 감독 아닌가 싶다. 상업영화로는 <도쿄 리벤져스>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을 선정해 야외극장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하나부사 츠토무 감독의 <도쿄 리벤져스>는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데 마치 <빽 투더 퓨쳐>의 일본판 같은 느낌이라 즐겁게 볼 수 있는 코미디다. 구사노 쇼고 감독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은 동성애를 깊이 있게 다룬다. 말랑하고 예쁜 청춘영화처럼 포장했는데 보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이 많은 감동적인 영화다. 일본 상업영화가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굉장한 강점이 있구나 싶은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다.

굉장히… 많다.(웃음)
(웃음) 서아시아 영화도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히어로>는 올해 열린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유명한 영화라 모두 알 거다. 예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킥 오프>(2009)라는 작품으로 뉴 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했던 샤우캇 아민 코르키라는 감독이 이번에는 <시험>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피프레시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후다의 미용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첩보 전쟁 사이에 낀 두 여자의 이야기로 긴장감을 지니고 가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하니 아부-아사드 감독이 연출했다. <흰 암소의 발라드>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관객상(3위)에 오른 작품으로 이란 영화의 힘을 정말 잘 보여준다.

언급한 피프레시상은 국제비평가연맹이 개별 영화제의 섹션 상영작 중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감독의 1~2번째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뉴 커런츠 부문 후보자 중에 수상자를 고르니, 상대적으로 신진 감독이 수상할 가능성이 높겠다.
피프레시는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 같은 영화제에서도 시상하는 상이다. 다만 어떤 섹션을 심사대상으로 삼을 건지는 각 영화제의 요청마다 달라진다. 우리는 메인 경쟁 섹션이 뉴 커런츠 부문이기 때문에 거기에 오른 작품을 시상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자 주: 올해 뉴 커런츠 부문 후보작은 11편이며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박강 감독의 <세이레> 등 국내 작품도 두 편 포함돼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배정받은 올해 영화제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2019년과 2020년 15억 수준이던 것이 올해 12억 8천 만 원으로 줄었으니 프로그램 준비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매년 영화제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예산을 더 주기도, 덜 주기도 한다. 올해는 덜 받았는데 납득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결론이 그렇게 났으니 그에 맞게 예산을 짜야 했다. 말하자면… 허리띠를 졸라맨 거다. 주로 홍보 쪽 예산을 절감했고 데일리도 온라인으로 만들었다. 내가 구세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웃음) 종이로 만든 데일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만들지 못했다.

종이 데일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영화제에 오는 관객들은 영화 상영을 기다릴 때 영화제 소식을 담은 읽을거리가 필요하다. 물론 핸드폰으로 많은 것들을 읽을 수는 있는 시대가 됐지만, 종이로 만든 무엇인가를 (손에) 지니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굉장한 차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종이 데일리의 장점이 있다.

올해 영화제가 어떻게 기록됐으면 하나.
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영화인에게 힘과 용기를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을 준 영화제가 되기를 바란다.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게 점점 더 두려워지고, 극장 가는 습관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작년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 오프라인 상영을 했는데 감독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영화제가 정말 필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창작자들이 많이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올해도 그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했다는 결과를 내놓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사진 제공_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

2021-10-06 | 글 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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