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변화의 시작”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집행위원장

2021-10-07|이금용 기자 구독하기

[부산= 무비스트 이금용 기자]


올 초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허문영 위원장은 부국제의 과거와 현재를 영화제 안팎에서 오랜 기간 지켜봐왔다. 그렇다면 미래의 부국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질문에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앞으로의 부국제는 “수평성, 지역성, 탈중심성의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올해가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답한다.

영화 기자로 시작해 평론가로 활동하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직을 맡았고 이후 시네마테크부산과 영화의전당에서 프로그래밍과 운영을 총괄했다. 오랜 시간 영화계에 몸담아 왔지만 한 영화제를 이끄는 자리는 처음이다.
프로그래머와 집행위원장의 업무는 전혀 다르다. 프로그래머의 주된 일은 영화를 보고 선정하는 것이고, 집행위원장은 여러 관계기관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등 행정을 도맡는다. 그 전까지 해왔던 일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행위원장은 행정가 혹은 관리자에 가깝다. 이런 쪽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내가 잘 하고 있나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웃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해외 출장도 많이 가고, 국제영화제에 들러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어려워서 그 지점도 아쉽다.

영화제는 매해 그해의 방향성을 담은 슬로건을 공개한다. 지난해 부국제의 슬로건은 ‘새로운 시작, Always BIFF’였는데, 올해는 슬로건이 공개되지 않았더라.
대외적으로 특별한 슬로건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슬로건은 있다. 하나는 ‘영화를 경배하자’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일 거다. 훌륭한 영화와 영화인들을 만나고, 또 좋은 영화적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부국제의 주된 일이었고 올해도 가장 핵심적인 일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슬로건은 ‘영화야 놀자’인데, 예술적 성취를 중심에 둔 ‘영화를 경배하자’란 슬로건과는 상반된다. 영화는 일상적이고 친숙하며, 언제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영화제의 중심부인 영화의전당 일대에선 전통적인 슬로건인 ‘영화를 경배하자’에 맞는 이벤트와 상영이 진행될 거다. 동시에 부산시 전역에서 일상적이고 생활밀착적인 이벤트를 추진함으로써 영화제가 영화 전문가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맞는 2번째 영화제다. 지난해엔 개·폐막식을 비롯한 야외 행사를 전면 취소하고, 상영은 영화의전당에서만 진행됐다.
올해 영화제 역시 팬데믹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제 기획 초기 단계에선 코로나로 인한 특수 상황에 맞춰 올해 영화제 규모를 작년 개최와 정상적인 개최의 중간 수준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게 준비했다. 그런데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이지 않나. 준비가 진척될수록 정상 개최에 가까운 수준으로 규모를 확장해도 되겠더라. 그래서 영화관과 상영작 수를 예년 수준으로 확보하고, 또 각종 프로그램 또한 정상 개최에 가까운 수준으로 준비했다. 예년의 7-80%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준비하면서 내부의 이견은 없었나.
내부에서는 정상 개최에 가까운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무리 없이 합의됐다. 여기에 대해 이견은 전혀 없었다. 이를 위해 방역 당국과 수차례 협의를 진행했다. 방역 문제에 있어선 우리 내부의 견해보다 방역 전문가들의 견해와 방역 당국의 지침이 중요했다. 올해 영화제 규모는 그 협의의 결과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개막식에선 1,200명 정도의 관객과 게스트를 모시고 진행할 수 있는데 이건 방역 당국과 협의된 수다.

모든 상영작이 100% 오프라인 상영된다는 것도 놀랍다. 아직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다수 국내 영화제들이 온라인 상영을 필수 동반하거나, 온라인으로만 영화제를 개최하는 추세인데.
영화제는 영화와 축제의 결합이다. 축제라면 축제에 걸맞는 형식이 필요하지 않겠나. 축제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에 모여서 교감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장으로 기능해왔다. 더군다나 영화가 중심이 되는 영화제라면 함께 모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만드는 공동체 예술이자, 민중을 위한 예술, 여러 사람이 향유하는 예술로 시작했다.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의 유전자에 공동체성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축제는 당연히 물리적으로 공간과 호흡을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돼야 된다고 믿었고, 또 영화제를 이끄시는 많은 다른 분들도 여기에 뜻을 같이했다.

100% 오프라인 상영이란 방침에도 우리끼리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 다만 영화제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상영작 중에서도 향후 국내에서 정식으로 개봉될 기회를 얻기 힘든 단편은 온라인으로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보다 많은 관객이 좋은 단편들을 만나봤으면 한다.

부국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영화제다. 해외 영화제 및 영화인과의 글로벌 네트워킹 등 소통과 교류 정도는 어떤가.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여파 때문에 현재로서는 최소한의 교류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엄격한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교류는 내년부터 시작될 거다. 당초 올해 영화제에도 팬데믹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집행위원장급 영화인들을 초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계획대로 추진하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크다.

올해 영화제에선 특히나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그 중 하나가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 섹션이다.
중국영화 특별전은 내가 적극적으로 요청해서 신설된 특별전이다. 중국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1988)을 기점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워낙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터라 한국 관객들도 당시의 중국 영화는 비교적 많이 접했을 거다. 그런데 장예모와 천카이거 감독을 필두로 한 5세대, 지아장커와 장유 감독 등이 속한 6세대 이후의 중국영화는 국내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을 거다. 최근 10년간 중국에는 신진 감독들이 많이 등장했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이전 세대에게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아시아 영화의 한 축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2010년대에 등장한 젊은 중국 영화인들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당 특별전에서 추천작이 있다면.
사실 시간적인 문제로 모든 상영작을 관람하지는 못했다. (웃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편을 꼽자면 구샤오강 감독의 <푸춘산의 삶>이다. 사실 작년 부국제에서 먼저 소개됐는데, 1회만 상영하기도 했고 관객수 제한 때문에 현장에서 영화를 본 분이 많이 없을 거다. (웃음) 이전의 중국 영화 흐름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이고 이단적인 영화다. 그 전엔 중국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격렬하게 또는 침울하게 반응하는 영화가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중국의 사회적 현실이 아닌 전통 의상을 조용히 관찰하면서 신비로운 순간을 포착해낸다. 명상적이고 우아하다. 이번 작품이 1988년생인 구샤오강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이 감독은 앞으로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간 유수 영화제에서 OTT 작품을 두고 여러 갑론을박이 있었지 않나. 그래서인지 OTT 작품을 상영하는 ’온 스크린’ 섹션도 흥미롭다. 더군다나 영화도 아니고 시리즈물만을 다룬다.
많은 영화인들이 영상을 상영하는 플랫폼을 두고 영화냐 아니냐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OTT라는 플랫폼 자체에 주목할 게 아니라 영화와 시리즈물의 경계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선 그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거다. 일반 관객에게 중요한 건 ‘이걸 영화로 봐야하나 말아야하나’가 아닌 재미 그 자체다.

우리는 학술대회가 아니라 영화제를 개최한다. 그래서 영화의 개념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리즈물을 영화의 축제, 영화의 나라에 하나의 참여자로 환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시리즈물은 영화보다 훨씬 훌륭하다. 또 단순한 재미를 넘어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제는 플랫폼이 아닌 영화와 시리즈물의 경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넷플릭스의 <마이 네임>과 <지옥>, HBO의 <포비든>이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 왓챠, 카카오TV, 웨이브 등 국내 플랫폼 작품이 목록에 없어 아쉬웠는데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기준은 영화를 선정할 때와 동일하다. 우선 작품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또 동시에 시리즈물만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인 호소력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정했다. ‘온 스크린’ 섹션은 점차 규모를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기준에만 부합한다면 종합편성채널에서 제작한 드라마를 상영할 생각도 있다. 예를 들어 종합편성채널에서 사전 제작으로 18부작 드라마를 만들면, 그 중 첫 3부 정도를 부국제에서 소개하는 식이다.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며 영화의 개념에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개방적으로 다가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의 구현이 바로 ‘온 스크린’ 섹션이다.

이외에도 영화제에서 관객이 꼭 경험했으면 하는 영화가 있다면.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서 소개되는 독립영화들 중 우수하고 재밌는 작품이 많다.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의 영화는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아서 잘 찾아서 보실 테지만 비전 부문의 상영작들은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라서 생소할 거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시간 내어 관람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번 부국제에서 주력으로 밀고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바로 ‘동네방네 비프’다. 해운대와 중구 외 14개 구군에 스크린을 설치해 프로그래머 추천작을 상영하고 게스트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하는 등 부산 전역으로 영화제를 확산한다.
부국제는 근본적으론 지역영화제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영화제에 참여하지 않는 부산 시민들도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영화의전당을 찾지 않아도 시민들이 동네에서 쉽게 영화제 상영작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즉 동네방네 비프’는 부산의 로컬을 마주 보는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올해 시범적으로 영도 쪽에서 마을 주민 한 팀이 영화를 직접 제작한다. 영화의전당과 부국제가 공동 사업으로 진행 중인 유네스코 창의도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만들어진 작품은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배우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고 작품성이 좋다 나쁘다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러한 발상은 동네방네 비프의 장기적인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이 프로그램을 단기간에 널리 확산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영화를 제작하며 배우고 즐거워하는 과정이 일상이 되면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제가 추구해야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훌륭한 영화와 영화인들이 영화제에 더 많이 모이게 해야 한다. 그게 영화제의 핵심적인 역할이고 이는 더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국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때라고 생각한다. 개방성과 수평성, 탈중심성의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거다. 영화의 질을 따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과 배움으로 담론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영화의 미학적 가치를 고민하는 일은 영원히 중요한 작업으로 남을 테지만, 이외에도 영화제가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과 배움을 확산시키는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올해 부국제는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서 최대한 개방적인 자세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 또 기존 결과물, 작품성의 가치뿐만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중요함까지도 강조함으로써 수평성 또한 챙겨가려 한다. 영화의 중심부에 대중이 오르기 어려운 높은 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뿌리를 널리 뻗는 부국제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거리에 사람이 드문 한적한 시간에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멍 때리면서 천천히 책 읽는 것을 늘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아왔다. 얼마나 천천히 읽냐면 한 시간에 한 페이지 정도 읽는 거다. 절대 그 이상은 안 된다. (웃음) 그게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는데, 올해 부국제를 맡으면서 바빠진 탓에 그 즐거움을 잠깐 내려두고 있다. 영화제가 무사히 끝나고 조만간 이 여유를 다시 즐겨볼 계획이다.

사진제공_부산국제영화제

2021-10-07 | 글 이금용 기자 (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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